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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 취미 추천 – 뜨개질 편 (부제 : 엉망진창 대환장 뜨개 서사)

LIFE

by 오즈앤엔즈(odd_and_ends) 2021. 12. 1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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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뜨개질 바늘도 안 쥐어본 초심자가 얼레벌레 뜨개질한 일을 기록한 글 입니다. 읽을수록 엉망진창 이해할수록 대환장인 뜨개 서사를 공유하면서 '그래 실수투성이 쟤도 뜨개질 하는데 나도 뜨개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늘을 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다이소에 갔다. 뭘 사러 간다는 목적보다, 심심한 마음을 소비로 채우고 올 심산이었다. 때는 10월 31일. 각종 할로윈 기념 오브제를 지나고 나니 오히려 내 눈길을 끈 것은 한 번도 관심 가져보지 않았던 뜨개질 코너였다.

▲ 내 눈길을 사로잡은 다이소 뜨개질 코너 (사진=흰지)
 
실 하나에 1000원 바늘 하나에 1000원
 
▲ 실만 봐도 흰지는 배가 부를 지경에 이르렀다... 실사기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시키는 것이다. (사진=흰지)
 

나는 다한증이 있다. 성인이 되고 나니 손에 땀이 나는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어렸을 땐 손이 항상 축축할만큼 심한 증상을 갖고 있었다. 한창 손이 축축했을 때 마주한 것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실과 시간이었다. 내 손이 닿을 때마다 기분 나쁘게 젖어버리는 (물론 과장에 의한 내 기억에 의존한 글이다) 실타래가 좋았을 리 없었으며 꼼꼼함 마저 겸비하지 못한 나의 천성은 코의 개수며 실뜨기 순서를 하나하나 재야 하는 뜨개질이 맞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실과 시간에 과제로 받은 목도리는 엄마의 손을 거쳐 완성 되었고 그 이후 10년이 넘도록 나는 내 자의로 바늘을 쥐어본 적이 없었다.

▲ 글에 쓰인 첫 번째 실 쇼핑 이후 두 번째 실 쇼핑 때의 사진. 저 날 구매한 마이멜로디 인형은 뜨개질 할 때 목받침용으로 두고두고 사용하고 있다 (사진=흰지)
 

그런 내가 다이소에서 뜨개질 소품을 덥석 쥐게 된 것은, 천원에 구매할 수 있는 대바늘 하나와 실타래 하나였다. 내 기억 속의 희미하게 남은 뜨개질은 분명 실 하나 바늘 하나 있으면 뭐든 뜰 수 있는 취미였으므로 (당시에는 그것이 섣부른 나의 오해인 줄도 모르고) 그래 이렇게 저렴하게 시작할 수 있는 취미라면 당장에라도 나도 새롭게 시작해보자 싶었다. 그 날로 나는 네이비색 그리고 초록색의 아크릴실 두 타래와 대바늘 하나를 샀다.

시작은 네잎클로버 키링
 

▼ 다이소 아크릴 뜨개실 (그린) 사용 

▲ 처음으로 구매해본 아크릴 뜨개실 그린과 네이비 색상 (사진=흰지)
▲ 몇 번을 풀렀다 뜨기를 반복했던 네잎클로버 키링 (사진=흰지)
▲ 내 인생 최초 뜨개질로 뜬 네잎클로버 키링 (사진=흰지)

첫 도전은 SNS에서 스치듯이 본 네잎클로버 키링이었다. 원래 초심자일수록 작은 소품을 뜨는 것이 실력 향상에는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는 뒤늦게 들었다. 원래 집에 있던 코바늘로 네잎클로버 하나를 겨우 떴을 때 역시 꼼꼼하지 않은 내 성격에 무슨 키링이냐며 바늘을 놓아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대체 뭔 정신으로 세 개나 더 떴는지? 옹기종기 내 손을 탄 클로버들이 모여있는 꼴이 퍽이나 귀여웠다. 뜨개질은 생각보다 재밌구나. 생각도 들었다.

▼  다이소 면 뜨개실 (코랄) 사용

▲ 지인에게 선물로 준 키링과 네잎클로버 키링. 색색깔로 뜨는 네잎클로버 소품도 꽤 예쁜 것 같다. (사진=흰지)
 

가까운 지인한테 키링을 사주면서 핑크색 클로버 키링을 하나 더 선물로 딸려 보낸 이후엔 뜨개질의 재미에 조금씩 물들었던 것 같다. 뭣도 모르고 다이소의 여러가지 종류의 실타래를 이것 저것 사는 재미를 알아갔다. 지금은 쓰지 않는 좋아하는 아이돌 시즌 그리팅 상자를 꺼내어 실타래 보관하는 곳을 따로 두기도 했다. 취미를 쓰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즐거움이 있었다.

내 인생 첫 수제 카드지갑

▼ 다이소 구름 뜨개실 (와인) 사용 

▲ 이틀동안 실을 풀었다 떴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감 아닌 감을 찾았을 때의 사진 (사진=흰지)
▲ 자세히 보지 말아야 예쁘다. 오래 보다 보면 또 사랑스럽다. 내 지갑도 그렇다. (사진=흰지)

믿기 힘들겠지만. 보다시피 카드지갑이다. 다이소 구름뜨개실 와인색상 1타래를 사용했고 위의 링크 강의를 열심히 들으며 이틀만에 완성했다. 코는 또 왜 줄어든 것인지 왜 중간에 빈 공간이 생긴 것인지 사실 실이 어떻게 엮이고 떠지는 원리조차 모른 채 영상만 보며 손을 놀린 재주가 어디까지 갈 수 있으려나 싶다. 어디에 내놓기 부끄러운 결과물이지만 나름 예쁜 단추도 달아가며 열심이었고 실제로 카드도 넣어 나의 주머니 한 켠을 항상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실제로도 구름 뜨개실은 신축성이 없고 짱짱한 특징으로 가방이나 카드지갑 용도로도 많이 쓰이는 것 같았다. 

▲ 사실 초보자일수록 작은 소품보다는 목도리 같은 큰 소품이 실력 향상에 더 낫다는 걸 뒤늦게 알아버렸다 (사진=흰지)
 

아무튼 나의 첫 코바늘 카드지갑은 그렇게 얼레벌레 완성되었지만... 나는 이 기회로 자신감을 얻어 냅다 대바늘 목도리까지 시작해버렸다. 다이소 포인트 아크릴실 네이비 색상으로 잡은 대바늘 26코. 이제 소품 몇 개만 뜬 초심자가 과연 목도리 같은 장거리 레이스를 달릴 수 있을지도 그때 당시엔 다 미스테리였다. 

인생 두번째 카드지갑

▼  다이소 벨벳 뜨개실 (베이지) 사용 

▲ 부들부들한 감촉의 카드 지갑을 만들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힘이 없어 오히려 담요 같은 것에 적합했던 벨벳 뜨개실 (사진=흰지)
 
▲ 이렇게 놓고 보니 제법 곡물 같아서 오밀조밀 귀여웠다... 역시 빠트린 코 부분은 인간미와 애교의 상징이다 (사진=흰지)
 
▲ 모두 완성시키고 나서 어딘가 허전해서 다이소 뱃지를 달아보았다 (사진=흰지)
 
▲ 카드도 들어간다... 그래 그럼 그걸로 됐다 (사진=흰지)
 

다이소의 실타래가 저렴하다보니, 종류별로 쟁여놓으면 심심할 때마다 소품 하나씩 유튜브 보면서 뜨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았다. 벨벳 뜨개실 베이지 색상으로 또 다른 카드 지갑에 도전해보았다. 결과는… 보다시피 중간 중간 힘 조절도 실패했고 하나 둘씩 빠트린 코가 이 카드 지갑은 전혀 온전한 모습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듯했다. 매일 퇴근하는 엄마에게 그날 하루 뜬 뜨개질 소품을 보여주는 맛에 들린 나는 엄마 앞에서도 “이런 빠트린 코들이 다 나의 인간미를 증명해주는 거지”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뜨개질은 반드시 잘해내야 하는 성과물이기 보다 외부와 차단되어 그 날 하루 찌든 마음을 걸레 삶듯 푹 삶아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 아예 실타래용 서랍을 하나 따로 만들어놨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한 번씩 열어보곤 한다 (사진=흰지)
 

소품 두 개를 뜨고 나니 뭐든 같은 레시피를 반복해야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감’이란, 내가 왜 이 구멍에 바늘을 넣어 실을 꿰는 것인지, 이 꿰인 실이 결국 무슨 모양으로 자리잡힐 것인지 머릿속으로 이해하고 그려내는 능력을 말한다. 그 감 없이 무작정 유튜브만 보며 영상에 맞추어 손을 놀리고 나니 자꾸 빠트린 코와 아무 짓(?)을 하지 않아도 거듭할수록 스스로 줄어드는 단이 보였다. 뭐든 반복이구나. 뜨개질을 잘할 욕심도 없고 그저 실이 엮이는 그 재미에 스트레스를 풀어가던 이 직장인 초심자는 이 간단하고도 명확한 원리를 그제야 깨달았다.

목도리라는 장기 레이스

▼ 다이소 포인트 아크릴 뜨개실 (네이비) 사용

▲ 중간에 실수한 부분이 보인다면? 모른 척하면 된다... (사진=흰지)
▲ 첫번째 타래를 다 쓰고 두번째 타래에 도입할 무렵의 사진 (사진=흰지)
 

카드 지갑 2개를 뜨고 나선 대바늘 목도리를 시작했다. 다이소 포인트 아크릴 네이비 색상으로 시작코수는 26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겉뜨기 두 번과 안뜨기 두 번을 반복했는데 나는 뭐가 겉뜨기이며 뭐가 안뜨기인지 처음 일주일은 구별조차 하지 못했다. 코모양을 보지 못하는 내가 입으로 직접 겉겉… 안안… 하며 셀 때면 이미 뜨개질을 할 줄 아는 친구가 입으로 세지 말고 코 모양을 보고 구별을 지어보라며 답답하다는 듯 조언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 타래 반을 떴을까? 겉뜨기를 세 번하거나 코 하나를 빠트리는 등의 실수들은 점점 줄어가기 시작했고 나의 그 거지같던 안목에도 드디어 뜨개질의 모양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 호캉스를 다녀온 날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아 일드를 보며 뜨개질을 했다 (사진=흰지)
▲ 5번째 타래를 뜨고 있는 현재 목도리는 아주 아주 길어지고 있는 중이다 (사진=흰지)
 

호텔 호캉스에 놀러간 날에도 새벽 정적을 이겨낸 건 바로 뜨개질이었다. 오늘로 딱 다섯번째 타래를 뜨기 시작한 목도리는 드디어 목에 두 번은 감을 수 있을 정도로 훌찌럭 길어져버렸다… 네번째 타래에서 멈출까 했지만 미리 사다 놓은 다섯번째 실은 꼭 써보자 싶어 다섯번째 실을 이은 것이 바로 오늘 일이다. 목도리 뜨개질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만들어본 것 중 가장 마음이 가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조금은 더 정교하게 만들어보자

▼ 다이소 구름 뜨개실 (와인) 사용

아크릴실, 구름실, 밍크실, 팝콘실… 다이소 실이란 실은 거의 종류별로 모아놓긴 했는데 다이소 실의 특성 상 저렴한 만큼 중량이 적어 작은 소품 외에 목도리, 장갑 등은 적어도 두 타래 이상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실타래 포장 뒷편에 각 소품별 필요한 실의 개수가 안내되어있다) 내 경우엔 쓰지 않은 자투리실들이 늘어만 갔다. 저번에 뜬 구름뜨개실로 티코스터를 떠보기로 했다.

▲ 첫 원형뜨기 도전! 구름실이 단단한 만큼 뜨개질을 할 때 너무 뻑뻑한 감이 있어 하면서도 손이 아팠다 (사진=흰지)
▲ 완성한 모습... 단에서 단으로 옮겨가는 부분이 유독 울퉁불퉁해 보인다면? 착시다 그냥 착시현상일 뿐이다 (사진=흰지)
 
▲ 티 코스터의 묘미란 미운 부분은 컵으로 그릇으로 얼마든 가릴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사진=흰지)
 

첫 코를 잡은 부분을 단수링으로 표기하지 않아 울퉁불퉁한 부분이 있는데… 티 코스터를 만들었는데 망친 부분이 보인다면? 컵으로 가리면 그만 입니다. 원래 이렇게 하려고 만든 거니까… 농담이고 다음에는 단수링을 끼우든 클립을 끼우든지 해서 티코스터로 제대로 된 원형 뜨기를 몇 번 연습해볼 심산이다.

뜨개질 식구도 늘었다

바늘 한 개 가지고 다니던 내가 점차 식구를 늘려간 것도 큰 사건이었다. 전용 뜨개질 파우치를 본격적으로 챙기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 모 화장품 회사 사은품으로 기억하고 있는 파우치 (사진=흰지)
▲ 안에는 역시나 별 게 들어있지 않지만... 나에게도 뜨개질 짐가방(?)이 생기다니 감격스러울 노릇이다 (사진=흰지)
 

아직 본격적으로 뭘 소개하기엔 소품이 조촐하다. 거진 다이소에서 구매했고 은색 코바늘은 가까운 시장의 털실가게에서 득템했다. 나머지는 거진 다 다이소 출신들이다. 얼마 전에 입지 않은 가디건을 버렸을 때 가디건에 달린 단추를 떼어다 틴케이스 안에 보관해놓기도 했다. 안방 한 구석 엄마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바느질 바구니를 작게 하나 마련한 기분이라 좀 좋았다. 취미를 이어나가는 일은 시간에 공간에 내 손을 직접 태우는 것이구나, 오랜만에 느껴본 것도 같다. 

앞으로도 계속 떠볼 것들

▼ 위에서부터 다이소 아크릴 뜨개실 (그린), 다이소 팝콘 뜨개실 (오트밀), 다이소 아크릴 뜨개실 (브라운) 사용  

▲ 최근 뜨고 있는 크리스마스 가랜드 (사진=흰지)
▲ 원래 크리스마스는 뜨개질이 울퉁불퉁한 맛으로 따뜻함을 느끼는 명절이다 (사진=흰지)
▲ 다이소 팝콘 뜨개실은 정말 너무 예쁜 것 같다 다음에 또 쟁여와야지 (사진=흰지)
▲ 비니를 뜨기 위해 아크릴 실 3개를 한꺼번에 구매했는데... 중앙에 있는 실의 색깔이 미묘하게 다르다... 뜨개질을 하고 있는 지인의 말로는 다이소에선 흔한 일이라고 (사진=흰지)
 

목도리 완성은 물론이오 크리스마스 가랜드를 하나씩 이어가고 있다. 원형뜨기 연습 겸 티 코스터도 실 종류별로 만들어보고 싶고 대바늘 목도리가 완성된 후엔 쁘띠 목도리를 하나 더 뜨고 싶다. 팝콘실 색상이 워낙에 예뻐 귀도리도 뜨고 싶고 수족냉증이 있어서 핸드워머도 떠보고 싶다… 할 줄 아는 재주에 비해 머릿속에 도안은 끝도 없이 늘어만 간다. 

실은 길고 겨울은 짧다. 나는 또 조급한 마음에 코를 빠트리고 아무 죄도 없는 단을 늘이거나 줄이거나 하겠지만 뜨개질 하는 시간만큼은 잡생각 없이 손을 놀릴 수 있다는 장점이 나를 자꾸만 바늘 앞으로 이끄는 것 같다. 누가 들으면 뜨개질로 한 획을 그은 사장님의 인터뷰 구절인가 싶을 정도로 구구절절하고 웅장하다.

서걱거리던 천원짜리 플라스틱 바늘이 내 손에 길들여져 소리도 덜 나고 부드럽게 마찰하는 순간과 마주했을 때는 정말 그랬다. 도무지 내 마음대로는 살 수 없는 현생을 잠시 떠나 내 손에 직접 익어 착 달라붙는 취미가 생기는 일은 나에게 정말 구구절절하고 웅장하고 그렇다. 그래서 오늘도 떠본다. 목도리며 담요며 상관없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나도 뭐 하나쯤은' 생각이 절로 들 수 있다면 그걸로도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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