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 건 굉장히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새로 일을 시작하면서 글을 쓸 시간도 체력도 없어졌다. 그래서 그냥 쓸 수 있는 글을 써버리자고 은연중에 생각했다. 어느 정도 아는 게 있고 그걸 나열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글.
막연히 그런 생각으로 연휴를 보내다가 문득 “학교 다닐 때가 좋을 때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 말이 예전엔 되게 재수 없게 느껴졌다. 나는 학교가 너무 싫고 지금이 싫은데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싫었다. 자기는 학교 안 다녀봤나, 똑같이 싫을 거면서 속으로 반박하곤 했다. 근데 어제는 그 말이 달랐다.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해낼 수 있게 교육하고, 이끌어 주고 적정의 과제를 주는 학교. 내가 노력하고 주어지는 것을 해내기만 하면 성취감과 보상을 주는 삶. 실수를 실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곳, 실수해도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안전선이 정해져 있던 학교의 삶. 학교에서 벗어나니 그런 ‘안전선’이 사라지더라.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최악의 결과를 받을 수 있다. 누구도 내가 해낼 수 있는가를 가늠해서 일을 주지 않는다. 그냥 내 앞에 떨어지는 일들과 해내야만 하는 내가 있다. 매번 한계와 부딪히는 마음이 들더라도 버텨야만 다음을 살 수 있다. 겪어보지 않은 일들에 나는 실수를 하고, 그때마다 나의 무능력함과 마주한다. 정신도 체력도 심하게 깎이던 나. 학교가 좋을 때라는 건 이런 의미도 있겠구나, 처음 생각해봤다.
사회에서 하는 실수는 결과를 가늠할 수 없어서 힘들었다. 사과로 끝낼 수 있는 실수인지 며칠을 다시 일해서 덮어야 하는 실수인지 모를 때도 있다. 실수한 순간엔 그냥 석고대죄를 해야 할 것 같은 실수들로만 보이니까. 때론 내가 만회할 수 없는 실수가 터져 멘탈이 다 갈리고 나면 한동안 아무것도 못 한다. 잘못은 내가 저질렀는데 정작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내가 이 공간의 쓰레기가 된 것 같고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실수는 두려움으로 커져 걷잡을 수 없이 나를 갉아 먹었다.
매일 메모와 나를 채찍질하는 일에 많은 정신력을 쏟았다.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모조리 메모하고 한 번 더 확인해도 될 일을 서너 번은 더 확인했다. 매 순간 바짝 긴장한 탓에 일 중간중간 넋 빠지듯 정신을 놓고 실수하고 다시 긴장하고를 반복했다. 이런 내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매일 실수할 수 있지, 다들 하잖아. 라고 나에게 말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실수에 그저 내게 괜찮아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더 터득했다. 친구의 말 한마디가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실수에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친구는 “너 다른 사람의 실수는 관대하게 지나가잖아. 다른 사람들도 너한테 똑같이 그래.” 문득 돌아봤을 때 나와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들에게 “뭐 그럴 수 있죠~”하고 몇 분 뒤에 금방 잊어버리곤 하던 게 생각났다. 다른 사람들도 내 실수에 그렇게 받아들일 거라는 말이 생각보다 크게 안심됐다. 실수에 깊이 빠질 것 같으면 ‘이 실수를 다른 사람이 했다면?’하고 상상했다. 웃기기도 했고 실수했나 보네 싶기도 했다. 이 방법으로 나를 탓하던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실수에 애를 쓴다. 실수하기 싫어 무수히 묻고, 메일 하나에도 몇 번을 다시 읽어보고 고친다. 완료된 일들도 한 번씩 들춰본다. 예민하고 날 선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하면서 덜렁이는 내가 싫어서 긴장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어리바리해서 실수가 없는 사람은 못 되니까 나를 다독여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더 힘들다. 실수하는 무능력함에 내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더 큰 무능력함이 느껴진다. 이러고 있는 내가 싫지만 그래도 버틴다. 친구의 말 한마디처럼 또 좀 더 나아지는 방법을 터득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등바등 버틴다. 아무리 다독여도 안 나아지는 마음이란 걸 너무 잘 알아서 그냥 버티고 있다.
나도 이런저런 실수를 극복하는 방법,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등을 소개해주고 싶었지만, 아직 못 찾은 내가 할 얘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실수하는 나에 대해 얘기하고자 했다. 실수에 힘들어하고, 힘듦을 견디지 못하는 자신에게 두 배로 상처받는 나. 나와 같은 사람이 어딘가엔 있을 거고 혼자는 아니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언제 마음이 놓아 질지, 다른 해결책을 찾을지 모른 채 그저 버티고 있는 게 나쁘지 않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구라도 그냥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거 같다. 그 사람도 나도 아직 찾아가고 있는 중이고 그런 사람이 혼자가 아니란 것만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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