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하남 스타필드에서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다음날 출근 걱정을 하며 우울하다고, 내 손과 머리가 욕심만큼 따라주지 않는 것 같다고, 모든 것이 다 내가 부족해서 이렇게 된 것 같다고 스스로 자책하고 있는 나에게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가 말했다. “너가 더 성장하려고 그러나보다!” 이 말 한마디가 나의 마음에 커다란 공간을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을까?
그때는 처음 해보는 분야의 대형 프로젝트에 사수 없이 메인 디자인파트를 맡고 있었던 시기였다. 모든 계열사의 이목이 집중되는 새로운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부담감도 컸다. 알지 못하는 어려운 용어들로 설명해주시면서 시안을 수정해오라는 퍼블리싱 담당자들 자리에 불려가 나의 짧은 연차의 부족함이 드러나기도 했었고, 첫 후임에게 맡겼던 부분의 실수가 온전히 다 나에게 돌아와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그날 내가 잘못했던 것만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던 시절이었다.
대학 시절 항상 내가 원하는 학점과 장학금을 받았고, 교수님들의 칭찬과 추천으로 “난 하면 다 잘해!”라고 생각하던 자만심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들이라 더 힘들었고, 처음으로 겪는 일들만 매일매일 벌어지던 날의 연속이었다. 이때, 무심한듯 따뜻했던 그의 말 한마디는 나의 마음에 “성장통”이 들어올 수 있을만 한 커다란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항상 성장을 갈구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면 극도로 불안함을 느끼는 나에게 “성장통”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는 일은 기쁘고 감사한 일이 되었다. 모든 힘들었던 순간이 “성장”을 하기위한 통증이었다고 생각하니 오기가 생겼고, 기꺼이 “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난 버티고만다.” 일명 “노빠꾸정신”이 발동되는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노빠꾸정신”은 곧, 만족할만 한 인사평가점수와 성과급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또 성장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빛과 어둠은 한 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행복과 불행의 공존. 삶의 곡선은 사람마다 다른 높낮이로 유동적이지만 그 곡선들이 채우는 넓이는 같다. 내 삶의 곡선이 변곡점을 찍을 때마다 '성장통'으로 여기고 기쁘게 받아들이자.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 감정의 파동을 삶의 리듬으로 여기며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
-
'TMI' 또는 아무 말 대잔치가 될지도 모르는 저의 콘텐츠가 여러분의 지친 생활 속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소소한 행복으로 전해지길 바라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강의 낮과 밤(부제: 나들이) (0) | 2020.02.04 |
---|---|
내가 카페를 가는 이유 (0) | 2020.01.23 |
애쓰더라, 실수에(부제: 자존감 높이는 방법) (0) | 2020.01.23 |
스스로 단단해지기 (0) | 2020.01.21 |
집순이가 집에서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생각 (0) | 2020.01.21 |
'도전'이라는 키워드를 안고 떠나는 여름휴가 (부제: 필리핀 여행) (0) | 2020.01.20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