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니는 사실 영화를 그다지 많이 보는 편이 아니다. 아주 재밌다고 소문이 난 것이 아니면 쉽사리 도전을 하지 못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4월 26일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우리나라 대표 여배우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받은 것이다. 그제서야 '아 미나리를 한 번 봐야겠네'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생명력 그리고 가족의 정을 아주 담담히 그려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미나리 속 가족들은 낯선 미국인 아칸소로 희망을 가지고 이민을 온 한국 사람들이다. 따뜻하고 평안하고 꿈과 희망이 가득할 것 같은 이민이었지만 불모지에서 새로 시작해야 하는 그리고 기댈 곳이 하나도 없는 황망한 곳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는 '외국인'
이런 점을 아주 잘 느낄 수 있던 것은 아빠 제이콥의 농장 작물이 망하던 순간, 바퀴 달린 컨테이너 집과 같은 열약한 환경도 아닌 머나먼 타국 속 한인이 하나도 없는 마을의 교회를 방문했을 때이다.
아이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던 엄마 모니카는 지속적으로 지역의 한인 교회를 방문해보길 원했다. 한인들이 같이 있는 곳에서라면 타국에서의 고충을 이해해 줄 누군가가 생길 거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 제이콥은 백인들이 가득한 곳의 교회에 방문한다. 그곳에서 제이콥 가족은 신기한 사람들 취급을 받거나 누군가와 쉽사리 말을 섞지 못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마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듯이 붕 떠버린 작은 섬, 그것이 그 당시 이민을 온 한인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처음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자 제이콥은 모니카의 외로운 마음을 이해하고 가족을 단단하게 묶어줄 사람, 할머니를 아칸소에 모셔오기로 결정한다.
할머니는 부모에게는 든든한 버팀목, 아이들에게는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낯설지만 할머니를 따라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아이들. 어른을 공경하지 않아 회초리로 혼이 나고 아빠 엄마가 가지 말라고 한 깊은 숲속을 탐험하고 미나리를 심다 뱀을 보기도 했다. 심장이 아파 잘 달리지 못했던 아들 데이빗은 천천히 빨리 걷게 되고 할머니와 함께 잠을 자면서 더 이상 밤이 무섭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병아리 똥구멍을 보면서 병이리감별사 일을 하고 쉬는 날에는 열심히 한국 농작물을 키워보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상황은 가족들의 마음을 병들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작은 시골마을인 아칸소에 이민 온 것을 자신도 모르게 후회하고 있던 모니카는 제이콥에게 화를 내면서 여기에 있다간 망할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린다. 그러나 제이콥의 입장에서는 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마음으로 이민을 온 상황이며 모든 재산을 걸어 놓은 사업이기에 실패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민을 처음 온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상황. 아무것도 모르고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외로움이 마음을 좀 먹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집의 온기를 가져온 할머니는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게 된다. 가족들을 큰 품으로 돌봐왔던 기둥이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움직이는 것조차가 힘든 할머니를 가족들이 돌봐야 하는 상황은 모니카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엄마와 아이들을 케어해야만 하는 모니카는 데이빗과 헤어져 도시로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렇게 가족의 해체의 순간, 기적적으로 데이빗의 심장의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심장 수술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좋아진 상태에 싱글벙글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족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할머니가 쓰레기를 태우던 중 가족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수확물을 몽땅 태워먹게 된다.
롤러코스터 같은 것이 인생이라고 했던가. 머나먼 타국으로 이민 온 이들의 삶은 원대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다 타버린 농장물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순간 할머니는 자신의 탓임을 자책하고 집에서 멀리멀리 걸어 도망친다.
그 순간 데이빗과 딸인 앤은 할머니를 붙잡는다. 그렇게 싫어하고 할머니 같지 않아 미웠던 할머니지만 자신을 돌봐주고 사랑해 준 가족이기 때문이다. 기적적으로 할머니의 상황이 나아지지는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다시 작물을 키워내야 했고 다시 적응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제이콥이 나지막이 내뱉은 마지막 대사는 "미나리 참 잘 자랐네. 맛있겠다"였다.
극 중반까지는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이민자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들의 삶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극 후반으로 갔을 때는 오히려 그 가족과 우리 가족을 겹쳐보게 됐다. 가족의 해체의 순간까지 갈 뻔했었고 여러 굴곡진 가족사를 헤쳐온 나의 가족이 보였다.
아마도 감독은 서로 다투고 아프지만 결국은 다 품어주고 천천히 그 상황을 순응하며 다시 힘내서 가는 것이 가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어린 시절의 회고록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기존 영화들과는 다르게 담담하게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있는 가족이라는 힘에 대해서 아주 상세히 그리고 와닿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장면, 미나리가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숲속에서 잘 자란 것을 보며 나는 이들의 앞날이 밝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미국 대중문화 잡지인 Variety에서는 미나리를 보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은 가족의 의미"라고 평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아프고 힘이 들지만 가족과 함께 나아가 결국 뿌리 깊게 퍼진 미나리처럼 될 것이라는 숨겨진 의미가 담겨 있다.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괜찮았던 영화, 미나리는 원더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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