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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긍정적인 신호탄 (영화 <승리호> 리뷰)

CULTURE

by 오즈앤엔즈(odd_and_ends) 2021. 2. 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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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영화 <승리호>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2021년 2월 5일, 영화 <승리호>가 상륙했다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요 근래 폰이든 PC든 들어가자마자 메인에 대문짝만하게 뜨는 그것. 바로 영화 <승리호>의 최초 공개말이다.
 

▲언제나 흰지의 넷플릭스 메인을 대문짝만하게 차지하고 있었던 영화 <승리호>의 모습(출처=흰지)


송중기와 김태리, 진선규와 유해진. 캐스팅 한 번 화려하다. 분명 <승리호>가 아닌 다른 한국 영화였다 하더라도 충분히 주목 받고도 남을 배우들이다. 그런데 이번엔 이야기의 핀트가 다르다. 이번에 배우들만큼이나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바로 배우들이 등진 배경인 광활한 우주. 그러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블록버스터 영화 <승리호>인 것이다.
 

▲영화 <승리호>의 스틸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승리호>는 2092년의 오염된 지구와 그런 지구를 떠나 개척한 새 인류의 보금자리 UTS, 그리고 그 어떤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비시민들이 떠도는 우주를 다룬다. 그 우주를 배경으로 한 승리호의 선원들 태호(송중기), 장선장(김태리), 타이거 박(진선규), 업동이(유해진)은 모두 우주 쓰레기를 줍는 청소부로 하루하루 삶을 연명한다.

그리고 어느 날 선원들은 승리호에 불시착한 로봇 '도로시'와 마주하게 된다. 어라, 그런데 이 아이. 알고 보니 우주에서 수배령까지 떨어진 인간형 로봇이자 대량살상무기란다. 선원들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돈이 되는 소녀를 거래하기 위해. 그래서 삶을 한 번 역전시켜보기 위해.

▲영화 <승리호>의 스틸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앞서 말했듯, <승리호>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영화다. 최초란 그야말로 홀홀단신이다. 비교대상이 없단 뜻이다.  우리가 국내에서 본 적 없던 '한국형 우주영화'라는 타이틀 앞에서 새삼 고개를 갸웃한 것도 이 이유에서다. <승리호>는 훌륭한 퀄리티의 해외 SF영화들을 지켜보며 높아진 관객들의 기준을 과연 충족시킬 수 있을지?

영화를 본 후 나는,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승리호>를 보라며 적극 추천하는 중이다. 이 영화 기본은 한다. 그래서 영화를 즐기는 방식이 달리진 이 시국에, <승리호>는 어떤 기준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추천한다! 즐거움은 기본

 
우리는 항상 미래의 이야기에 목말라 한다. 1985년 개봉한 영화 <빽 투 더 퓨처>에서 등장하는 2020년의 모습이 사실 지금 들어도 허황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하거나 실현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의 향연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림이 됐든 소설이 됐든 영화가 됐든, 인간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 미래를 그리며 우리는 확인하는 것은 미래 그 자체이기보다, 지금 이 순간 마주할 수 있는 현대 사람들의 상상력과 기대, 불안과 희망을 탐색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영화 <승리호>의 스틸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그래서 미래영화, 그것도 과학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근미래 SF에 대한 그림이 한국영화로 흥행한 적은 없을지언정 항상 관객 안에서 구미를 당기게 하는 주제 중 하나이지 않았나 싶다. <승리호>는 이러한 목마름에 퀄리티 있는 우주 이미지로 응답하는 영화다.

영화 러닝타임 첫 15분을 지났을 때의 내 심정은 솔직히 놀라움이었다. 15분 간 전개되는 스토리와 인물에 대한 스케치는 차치하고도 정말 그 배경이 되는 우주와 우주선의 구성이 놀랍도록 디테일했기 때문이다.

 

▲영화 <승리호>의 스틸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더군다나 <승리호> 속의 우주는 결코 고요하거나 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청소부들을 비롯한 ‘비시민’들이 날뛰는 무법지대에 가깝다. 우주의 새카만 공간 안에서 로봇과 우주선을 오고가는 액션 장면들은 정말 뛰어난 볼거리가 되어준다.

장선장이 이끄는 승리호가 영화 초반 개인의 이득을 위해 다른 우주선들을 추월하는 장면이나, 후반부 대의를 위해 우주선의 몸집을 이끌고 정면돌파 하는 장면들은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우리가 '블록버스터 영화'를 봤을 때 단박에 취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몫은 확실하게 챙겨가는 셈이다.

 

#대자본에 결코 눌리지 않는다, 조성희의 세계

▲<승리호>의 감독 조성희의 대표적인 전작 <탐정 홍길동> (출처=네이버 영화)


조성희 감독은 <승리호> 이전에도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 <늑대소년> 등을 연출하며 '조성희 월드'라는 수식어를 받은 바 있다. 그는 동화와 현실의 회색지대에 서는 감독이다.  시니컬한 세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선' 따뜻한 사람들에 항상 주목하고자 했다. 이번 <승리호>도 조성희의 시선이 통했을까. 

▲영화 <승리호>의 스틸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앞서 얘기했듯, 최초는 홀홀단신이다. 홀홀단신인만큼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주변에 실패든 성공이든 또 다른 예시로 들만한 사례가 없으니 분명 스토리를 맘껏 전개하기에는 대자본에 밀려 다소 움츠러드는 성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내 생각에 조성희는 나름의 돌파구를 잘 만드는 데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영화 <승리호>의 스틸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VFX 기술로 일구어낸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조성희는 아이를 중심으로 모이게 된 밑바닥 인생들에 대해 설토한다. 근미래라는 깔끔하고 현대적인 판에 '승리호'의 선원들은 모자이크 마냥 더덕더덕 붙여진다. 

사실은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태호, 마초적인 스타일의 장선장, 갱단두목이었던 타이거 박과 군용로봇 업동이까지. 공통점이라곤 좀 거칠게 굴러본 이력뿐인 이 사람들은 로봇 '도로시'를 꼬마 '꽃님이'라 부르며 서서히 가족으로 거듭난다.

 

▲영화 <승리호>의 스틸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혈육은 아니니, 이것이 '한국인의 정'일지. 나는 아이를 둘러싼 선원들이 점차 친해지는 장면들에서 '한국형 블록버스터' 속의 '한국'을 뼈가 저리도록 느꼈다. 꽃님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선원들의 얼굴이나, 선원들이 아이를 직접 씻겨주고 입혀주는 소소한 모습들은 그냥 일반적인 가족영화와 대입해도 이상하지가 않다.

그야말로 미운 정 고운 정, 볼 장 다 본 사람들이 하나의 일념으로 뭉치게되는 그 과정은 영화의 핵심 중 하나다. 조성희의 전작에서 이토록 한 데 모인 대안가족을 제시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는 'SF영화의 볼모지인 한국에서 SF영화가 개봉했다' 이상의 또 다른 흥미 지점들을 안겨다 준다. 여타의 다른 SF영화에서 이런 '정'이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결국 이 대안가족을 제시하는 과정은 조성희 전작에서 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연출이자 SF영화 시장 안에서 한국이 돌파해나갈 차별점일지도 모른다.

 

#조금은 궁금한 그래서 더 아쉬운, '장선장'

▲영화 <승리호>의 스틸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그래서 나는 장선장이 아쉬웠다. 장선장을 연기한 배우가 아니라 그를 비추는 스포트 라이트가.

승리호의 선원들이 나중에 현상수배되고 그들의 과거가 뉴스화면으로 브리핑되는 대목에서 인물 한 명 한 명의 ‘어둡고도 찬란한’ 과거가 등장한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태호의 과거사 말고도 우주해적단을 거친 장선장, 갱단두목이었던 타이거 박, 전쟁로봇이었던 업동이가 가진 장면들은 사실 그 짧은 분량으로 끝내기엔 아쉬울 정도다. 아무래도 후반부에 갈수록 태호의 이야기와 결말 장면으로 치닫게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분량의 선택이었을까.

영화가 막을 내리고 나서도 장선장이 자꾸만 생각났더랬다. 영화가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대목에서 김태리 특유의 호흡은 서사의 중심을 잡아주는데 일조한다. 김태리는 일약 스타이기에 대목에 따라 <아가씨>의 숙희의 얼굴이, <미스터 선샤인> 고애신의 얼굴이 보일 법 하건만  우주에서 최첨단 총을 쥔 장선장의 얼굴엔 빈틈이 없었다. 그 빈틈 없는 얼굴을 볼수록 그의 과거가 미친 듯이 궁금해진다. 비단 나만의 감상은 아닐 거라 확신한다. 우리는 장선장이 더 궁금하다! 그 밖의 다른 인물들의 미래도! 

 


#<승리호>의 이후를 기다리며

▲영화 <승리호>의 스틸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나의 구구절절한 <승리호> 리뷰는 결국엔 <장선장> 프리퀄 요구로 끝맺음 하게 되나? 여담이지만, 그래서 사실은 이 <승리호>의 서사를 드라마로 풀었다면 더 다채로운 이야기를 잘 풀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영화의 빌런으로 등장한 설리반이 과거 겪었다는 전쟁의 이야기도 좀 궁금하고)

영화로 이제 막 첫 발을 뗀 <승리호>에게 드라마화 요구라니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떼쓰기 같아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그만큼 내가 신이 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성희가 뗀 대자본의 첫 발은 자꾸만 우리를 <승리호> 이후에 데려다 놓는다. 영화가 2092년의 근미래를 꿈꿨듯이 자꾸만 이후 한국영화계에 또 어떤 새 바람이 불고, 새 신호탄이 터질지 기다리게 한다. 이 즐거움은 분명 <승리호>가 이룩한 쾌거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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