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가 다량 포함되어 있어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들은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토피아를 사랑하게 된 이후로 디즈니 영화가 나오면 꼭 보려는 이내, 특히 디즈니 중에서도 픽사가 만든 작품이면 더욱 흥미가 있었다. 픽사가 만든 인사이드아웃과 월E 등 굉장히 사랑했기 때문. 인사이드아웃은 나에게 충격적인 애니메이션 영화이기도 했다. 슬픔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고? 내 감정과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구나 새롭고 즐거웠다. 그래서 내게 픽사는 항상 새로운 소재와 시각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였다.
인사이드아웃 뿐만 아니라 월E를 보더라도 미래 로봇의 시선, 그것도 미래에 오래된 로봇의 시선으로 너무 발전해 희망 없는 지구를 표현할 줄 알았겠는가. 이런 픽사에서 인사이드아웃을 만든 감독이 새로 만든 작품인데 '소울'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흔한 제목일수 있는 소울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태어나기 전 세상? 그런 걸 상상하다니. 상상력이란 건 어마 무시하구나 싶기도 했다.
우리는 태어난 후의 모든 세계를 상상한다. 내가 사는 현재, 미래 그리고 죽음 후. 물론 태어나기 전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걸 세계나 다른 차원으로 생각하기보다 이전의 삶. 지금과 같은 삶을 이전에도 살았을 거고 그게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생’의 개념으로 많이 상상했다. 결국은 이 땅에서 벌어지는 상상이었다. 하지만 소울에서 얘기하는 태어나기 전 세상은 마치 죽음 후의 세상 같은 거다. 지구에서 벗어나 다른 강을 건너든, 길을 건너든 어쨌든 다른 세상으로 떠난다는 그 상상과 비슷하다. 태어나기 전 다른 차원이 있고 우린 거기서 ‘소울’로서 형성이 되어 지구로 보내진다(태어난다).
‘소울’ 감독은 전에 ‘인사이드아웃’을 만들었던 감독이다. 그때는 자신의 딸의 감정에 대한 호기심으로 머릿속의 감정 컨트롤 본부 세계를 만들었는데 이번엔 아들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작품이라고 한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고유한 성격을 지닌 것 같길래 이게 어디서 왔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됐고 그 생각은 태어나기 전 세상의 탄생 이유가 되었다. 소울에서 태어나기 전 세상은 고유한 성격을 형성하는 공간들을 다니면서 각자의 성격이 생성된다. 그렇게 영혼이 지구로 갈 준비가 되면 지구 통행증이 생겨 비로소 지구에서 태어날 수 있게 되는 세계다.
- 성격을 생성하는 공간
영혼들은 태어나기 전 세상과 세계를 관리하는 ‘제리’에 의해 반항적인, 장난기 있는 등의 성격 공간을 거치고 성격을 갖게 된다.
- 지구로 갈 준비가 되면 통행증이 생김, 그 전에는 지구 출입 불가능!
성격들과 더불어 ‘불꽃’이라 부르는 칸이 채워져야 통행증이 생기는데 영혼 22는 이 칸을 못 채워서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맴돌고 있는 중이다.
- 영혼들에게 멘토가?
영혼 22처럼 불꽃을 채우지 못하고 헤매는 영혼들에게 빨리 채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멘토가 매칭된다. 멘토는 삶을 이미 살았던 영혼들이며, 각자 삶의 전당을 보여줄 수 있다.
- 무아지경과 삶의 집착이 한 공간에!
영혼과 삶의 경계선에 있는 공간이 태어나기 전 세상에 존재한다. 특이하게도 무아지경이라고 부르는 최고의 집중 상태와 삶에 집착해 삶이 보이지 않는 괴물 같은 상태가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 둘은 다르지만 닮았다.
소울을 보고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 애니메이션, 어른들을 위한 거구나.’였다.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으려는 조의 강한 삶의 의지가 공감됐고 자신의 전당을 보며 쓸모없는 삶이었다 자조하는 조의 모습에도 깊이 공감했다. 어떤 이는 영혼 22를 보며 왜 살아내야 하는지 심드렁해하는 모습, 영혼 22가 조를 보며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살려고 하지 의아해하는 모습에서도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여정의 끝엔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나는 모든 문제가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움을 깨닫고 삶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일 줄 알았다. 하지만 소울을 보니 답과 문제 모두 지구, 현재의 삶에 있었다. 피자를 먹어보고 새로운 관점에서 친구와 얘기하고 엄마에게 자신 있게 자신의 꿈을 밝히는 등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모든 과정이 조와 영혼 22에게 해답이었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한 건 이 점에 있었다. 소울은 꿈을 찾아, 네가 하고 싶은 건 뭐지? 너는 어떻지? 에 대한 질문보단 친구와의 대화는 어땠어? 이런 기쁨 너도 느껴봤잖아, 이것도 삶 아닐까?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삶을 살 때 꿈의 성공, 어떤 목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이 부분은 각자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작은 행복들을 즐겨라, 혹은 현재를 즐기며 살아라 같은 얘기들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을 살 때 어떤 성공, 직업적 성취, 커다란 목표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엔 이 영화를 본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꿈의 무대에 서고 나서 이런 기분일 줄 몰랐다는 조의 말처럼 커다란 목표나 성공 같은 건 목적성이 강하다. 이루고 나면 그 뒤의 삶이 어떤지,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얘기해 주지 않는다. 이루기 전보다 허망할 수도 있다. 때론 삶 전체를 장악해 친구와 소통할 수 없게 하고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작은 우물 속에 갇히게 만든다.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답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다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조 역시 그 뒤로 이다음엔 뭘 해야 하냐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영혼 22와의 일을 곱씹어 본다. 거창한 목표, 성공을 불꽃이라고 말하던 조는 그제야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채우는 ‘불꽃’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 불꽃은 근사한 것도, 꼭 목표나 성공이 되어야 하지도 않다는걸. 태어나기 전 갖춰야 할 건 삶의 목표나 재능 등이 아니라 삶을 살아낼 의지라는 걸 말이다.
사실 곁다리로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해석을 해보고 싶기도 한 영화였다. 하지만 너무 넋두리가 될 것 같아서 제하고 이 말을 전하고 싶었다. 평소 즐거웠던 것들을 즐기지 못하고 버텨내고 있는 요즘 왜 소울을 힐링 영화라고 하는지 알겠다. 목표나 성공도 좋지만 현재를 즐기고 누리는 것, 소소한 일상을 인정하고 살아내는 것. 소울은 그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우리의 불꽃을 잘 생각하면서 이 시기를 잘 버텼으면 좋겠다.
* 정말 여담으로 이 영화의 쿠키는 테리의 단 두 마디다. (너무 허무해서 이것도 삶인가? 되물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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