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펜트하우스 2> 봤어?”라 물어본다면 열에 다섯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걸 벌써 해?”
한다. 벌써 우리의 '펜하 2'가 돌아왔다. 작년 말 파격적인 전개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이끌었던 드라마 <펜트 하우스>가 더욱 강렬해진 대립과 복수로 돌아왔다. “왜?”라는 질문보다 “와!”라는 감탄사를 뱉으며 즐길 수 있는 순옥킴(*작가 김순옥의 애칭이다)의 세계가 또 한 번 열린 것이다.
사실 나는 시즌1을 본방으로 달려보진 못했다. 그 질퍽질퍽한 진흙탕 싸움이 다 끝나고서야 “죽었대?”를 연신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도대체 그 드라마가 뭐길래 라며 뒤늦게 정주행 스타트를 끊은 1인이었다.
대세는 배속 돌려보기라고 하던가. 1화를 1.25배속으로 틀어두고 설렁설렁 일하며 볼 요량이었던 내 의도는 처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서사에 질문하기보다 연신 비명 지르며 롤러코스터마냥 질질 끌려다니는 맛에 홀딱 반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온 시즌 2는 우리에게 어떤 즐거움과 황당함을 알려줄까? 파헤쳐보자.
<시즌 1>의 초반, 인물들의 선악 대립은 뚜렷한 편이었다. 펜트하우스에 살며 ‘가장 높은 곳’이라는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는 천서진(김소연 역), 펜트하우스에 살지만 결국 자신의 딸의 죽음을 목도하고 복수하려는 심수련(이지아 역), 그런 심수련의 계획으로 펜트하우스에 막 입성한 오윤희(유진 역). 시즌 1이 재밌었던 이유는 선과 악의 중간지대에 선 오윤희가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이냐에 대한 주목도도 있었을 것이다.
시즌 2는 심수련이라는 인물이 부재한 상황에서 인물들 각기 모두가 면죄부, 빚, 업보를 지닌 상황이다. 키스신과 불륜이 남발하고, 10초만에 감정선의 판세가 뒤바뀐다 한들 혼란스러울지언정 채널을 돌릴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은 이 혼돈 속에서 어느 편을 들어줄지 귀추를 주목시킨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 전, 순옥킴의 세계에서 한 인물이 장렬하게 퇴장했다. 바로 주단태(엄기준 역)의 집에서 집사 노릇을 했던 양미옥(김로사 역)의 죽음이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주단태에게 이제까지 숨겨온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으나 내쳐진 양집사의 장면들은 사실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시즌 1에서 주단태의 자식들의 생모, 바로 나비문신을 한 여성이 양집사라는 궁예는 무참하게 짓밟힌 셈이다.
양집사가 죽자마자 등장한 새로운 인물, 진분홍(안연홍 역)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천서진의 딸 하은별(최예빈 역)의 고 3 생활을 책임져줄 학습 플래너라는 설정은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김주영 선생을 연상시킨다. 촛불을 켜두고 은별의 집에서 요리를 하는 강렬한 모습이 진분홍의 첫 장면인만큼 학생들을 마음대로 세뇌했던 그의 전적을 떠올리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은별은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기댈 수 없는 인물이고 엄마의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기도 한 은별이 어떻게 진분홍에게 마음을 열고 어떤 선택을 내릴지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펜트하우스의 스포일러 중 가장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지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심수련의 생존'이다. 시즌 1에서 분명히 칼에 찔려 죽는 모습이 생생하게 나온 지금으로선 사실 심수련의 귀환을 간절하게 원한다는 하나의 기대에 가까울 것이다.
사실 김순옥의 전작 <언니는 살아있다!>나 화제작 <아내의 유혹>에서 극 중 꽤 오랜 기간 죽었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것을 돌이켜 본다면 그리 개연성이 떨어지는 궁예도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즌 1에서 등장했던 나비문신의 여자에 주목하고 있다. 뒷모습만을 드러내고 어린 주석경, 주석훈을 안고 있는 여자의 정체. 나비문신을 한 여자의 등장 장면이 시즌 2의 티저 장면에 짧게 지나가는 것을 본 시청자들은 그 쇄골의 모습이 배우 이지아와 흡사하다는 추리를 내놓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어떻게든 심수련, 혹은 심수련의 얼굴을 한 다른 인물이 등장할 것이라 보는 편이다. 대체 심수련이 뭐길래. 심수련을 까맣게 잊어버려도 좋을 만큼 자극적인 사건 투성이인 시즌 2에서, 사람들은 왜 이토록 심수련이라는 인물을 연호하는 걸까.
심수련은 펜트하우스에서 억울하게 딸을 잃은 엄마로 그려지며 어찌보면 이 드라마 속 악의 끝판왕인 주단태에게 아무런 죄책감 없이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유일한 선이다.
김순옥이 그동안 써온 막장 드라마의 전적을 살펴보면 권선징악에 따라 죄를 지으면 그 죗값을 치루어 나락으로 떨어지든 회개하든 하는 것이 하나의 큰 규칙이다. 그 중심에 심수련의 딸 민설아의 죽음이 있고 오윤희는 민설아 살인사건의 진범이었다는 장면이 유효하게 존재하는 한 어디까지나 완전한 선의 쪽에 설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이러한 주인공 오윤희를 유일하게 용서할 수 있는(혹은 용서라는 권한을 가진) 민설아의 친모가 바로 심수련이다. 혼돈 속에서 유일하게 복수라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지닌 선의 존재라니 매력적이지 않은가. 펜트하우스는 그가 필요하다.
그런 혼돈 속에서 <펜트하우스> 시즌 2의 첫 장면은 다름 아닌 천서진과 전 남편 하윤철(윤종훈 역)의 베드신이다. 지금 이 타자를 두드리면서도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천서진이 주단태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든, 하윤철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든 간에 장면의 중간중간 진심이 아니지는 않았다는 감정선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시청자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다음 화에선 서로의 이득을 위해 비지니스 부부관계를 맺은 윤희와 윤철의 설레이는 장면들이 따라나온다. 일단 살을 맞대고 있는 이상 그것이 무슨 관계이든 간에 어느 정도는 정분이 나는 것이 펜트하우스 인물들의 특징이다. 서로의 얽히고 섥힌 과거와 현재 서사는 그들의 관계성을 더욱 재미나게 만들지만 정작 드라마 장면들이 보여주는 그들의 감정선에선 또 모호한 구석이 있다는 점에서 시즌 2의 전개는 더욱 흥미진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심수련이 부재하자 드러난 건 천서진과 오윤희의 앙숙 구도였다. 시즌 2의 1화와 2화 중 그래도 단연 하이라이트 장면을 꼽는다면 시즌2의 2화에서 성대결절에 걸린 천서진의 목소리를 오윤희가 대신한 장면일 것이다. 목소리를 되찾은 오윤희 앞에서 천서진은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 순간에 영락없는 꼭두각시 신세가 되어버린다. 오윤희가 어떤 죄책감과 업보를 가지고 있든지 간에 천서진이 그의 고등학생 시절 라이벌이자 트라우마의 대상자인 이상 이 관계의 역전은 시청자들에게 일순 짜릿함을 안겨다주었다.
모호해지는 것은 선과 악 뿐만이 아니다. 시즌 2에 들어서 아이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복잡해지는 그들의 서사만큼이나 아이들의 행보도 더욱 알 수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심수련의 딸 주석경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천서진의 딸 하은별은 마음둘 곳 없이 더욱 극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다. 순옥킴의 권선징악의 세계에서 오직 강마리(신은경 역)의 딸 유제니(진지희 역)만이 배로나를 돕는 중이다. 배로나가 청아예술고에 다시 입성하게 된다면 그의 장애물과도 같은 아이들은 또 어떻게 그 앞길을 막게 될까.
사실 드라마 속 불륜 장면보다도 종종 도를 넘는 학교 폭력의 장면들은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청소년 관람 불가 회차에서 더욱 자극적인 장면들을 위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한 사람을 무참하게 짓밟는 장면들을 종종 소비하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시즌 1에서 역시 학생이란 신분으로 어쩔 수 없이 당하기만 했어야 하는 배로나는 이제 성인을 앞두고 있고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딛음과 동시에 또 어떻게 그만의 결정을 내리며 성장할 지에 대해서 지켜봐야 할 것이다.
리뷰라고는 써봤는데, 문장 끝에 어째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해보겠다'의 연속이다. 정말 예상이 가지 않는다는 의미겠고, 또한 정말 앞으로가 궁금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심수련 없는 오윤희가 복수의 칼을 쥐면서 시즌 2의 신호탄이 터졌다. 주말 간 그 행보를 나 역시 정신없이 지켜보았다. 리뷰를 써야 한다는 의무가 있었음에도 개인적으로 고단한 일상으로 가득 찬 머리를 비우고 푹 빠져 드라마를 봤다. 언젠가 김순옥 작가가 강연에서 한 말을 떠올렸다. '오늘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사람들에게 내일 내용이 굼금해서 못 죽겠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다'라 했었지요. 순옥킴. 이번에도 당신이 이겼다. 그래서 리뷰의 끝에서 외친다. 빨리 다음주 금요일 오후 10시가 오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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