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히죽이다.
오래전부터 내게는 일종의 습관, 아니 어쩌면 고치지 못하는 고질병 같은 게 있다. 바로 ‘서브남주병’이다. 어릴적부터 순애보에 환장하는 타입으로, 남자 주인공보다 애잔하면서 짠내를 폴폴 풍기는 서브남주만 골라 좋아하는 이상한 취향을 가졌다.
처음 이를 인지하기 시작한 건 약 17년 전쯤, 꼬꼬마 초딩 시절부터다. 당시 순수했던 초딩 히죽은 수많은 드라마를 보며 확신했다. ‘자고로 여자란 나 좋다는 남자를 만나야 하는구나’라고. 이후로 내 취향은 한결같다. 지고지순한 순애보와 더불어 서윗함을 탑재한 남자. 그래서인지 본능적으로 서브남주에 끌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개인의 취향을 잔뜩 드러내보려한다. 그간 나를 설레게 했던 서브남주들만 모아모아 봤다. 우습지만 이게 뭐라고, 혼자 굉장히 진지해져서는 선정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나름 고심 끝에 엄선한 리스트이니 재미로 봐주길 바란다. 아, 오래 전 방영된 드라마도 있으니, 이해해주길.
서브남주 계보에 있어서 ‘파리의 연인’ 윤수혁을 빼놓을 수 있을까. 당시 초딩이었던 히죽의 잠들어 있던 서브남주병을 처음 깨닫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누가 서브남주 아니랄까봐, 늘 여주인공 ‘강태영(김정은)’의 뒤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키다리 아저씨같은 역할이었다. 극 후반부에는 흑화(?)라고 해야하나, “내 안에 너 있다”는 명대사를 남긴 후 머리를 자르고, 수염을 깎고 나타났는데. 정말이지 비주얼 충격, 너무 멋져서 말이 안나올 정도였다. 당시 엄마와 함께 한동안 ‘이동건 앓이’를 제대로 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제법 성장한 후 만난 서브남주가 바로 ‘미남이시네요’ 강신우다. 당시 내 나이 열여덟, 늘 따뜻하고 친절한 강신우에게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강신우는 여주인공 고미남(박신혜)의 비밀을 지켜주는 수호천사같은 역할을 맡았다. 특히 남장여자인 고미남이 샤워실에서 남자들과 마주하게 돼 당황한 상황에서 강신우가 수건을 씌워주던 장면은 가히 레전드다. 이 장면이 당시 얼마나 인기였는지, 정용화는 한동안 ‘수건남’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극 후반으로 갈 수록 존재감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강신우 정말 멋진 놈이었다. 하.
문재신(유아인) 아니, ‘걸오’는 작가가 “니들이 안좋아하고 베겨?”라며 작정하고 만든 서브남주인 것 같다.
걸오는 평소 품행이나 언행이 불량하고 거친 캐릭터로 나온다. 단, 여느 서브남주들이 그러하듯 오직 여주인공 김윤희(박민영)에게 만큼은 따뜻하고, 친절하다. 게다가 불행한 가정사로 내면에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반항아 캐릭터로, 늘 눈빛에 슬픔을 탑재해 모성애를 자극한다. 본디 이런 반항아 스타일의 서브남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꾸준히 인기가 있었다.
설명하다보니 안되겠다, 정주행 시작이다.
이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 ‘윤석현(이진욱)’도 좋았지만, 그보다 마음이 끌린 건 ‘신지훈(김지석)’이었다. 여주인공 ‘주열매(정유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이 신지훈이라는 캐릭터를 기점으로 내 이상형이 바뀌었을 정도다. 원래는 마음을 알 수 없이 애간장 녹이는 남자를 좋아했는데, 신지훈을 만난 이후로는 헷갈리지 않게 하는 남자로 바뀌었다. 그냥 무조건 나를 좋아해주는 남자가 역시 최고다.
유연석에겐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로 ‘구가의 서’에서 서브남주는 ‘구월령(최진혁)’이라고 본다. 마치 커다란 리트리버 한 마리처럼 순진하고, 사랑스러웠던 모습과 더불어, 극 후반부 흑화한 모습까지. 어디 하나 버릴 장면이 없다. 특히 꽃받에서 베시시 웃는 장면은 역대급. 게다가 사랑하는 여자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비극적 서사까지 완벽하다.
결론은, 미안해 유연석.
정말 마지막까지도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을 외치던 1인이 바로 나였다. “아, 이번 만큼은 최애가 남주구나”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또 서브였다.
무심한듯 하지만, 자상하고 따뜻한 정환(류준열)에게 몇번을 설렜는지 모르겠다. 정환이야말로 츤데레의 결정체다. 특히 마지막 고백씬은 최고다. 대사 하나하나가 감동이고, 눈빛은 또 얼마나 꿀이 떨어지는지. 심장이 터질뻔했다.
드디어 나왔다. 양봉 눈빛, 강하늘.
극 초반만 하더라도 이 드라마에서 ‘왕욱(강하늘)’을 뛰어넘는 자는 없었다. 잘 생기고, 멋지고, 자상하고, 스윗하고. 본래 남주라고 해도 믿을만큼 상상이상의 치명적임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극이 진행될 수록 나의 왕욱은 찐따가 되어간다. 결국, 극 마지막으로 가면서 남자주인공으로 노선을 바꿨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다. 그 눈빛. 사랑 가득 꿀 떨어지는 그 눈빛 만큼은 인정한다.
하, 진짜 사랑했다. 왕욱. 딱 8화까지만.
내가 ‘고백부부’를 보게 된 건 100% 장기용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히 튼 TV에서는 웬 멀끔하니 잘생긴 남자가 꿀 떨어지는 눈빛을 남발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장기용이더라.
극중 이름은 ‘정남길’이다. 장나라의 같은 과 선배로, 훈훈한 외모는 물론 길쭉한 기럭지로 일단 비주얼은 합격. 게다가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숨기지 않고 직진하는 거 하며, 여주인공 마진주(장나라)가 힘들 때마다 곁에서 지켜주는 모습이 정석같은 서브남주다.
크흡, 생각만으로 치인다, 치여.
애잔함이 서브남주의 기본이라면, 그 중에서도 끝판왕이 바로 ‘구동매(유연석)’다.
서브남주에 더 공을 들인다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미스터 선샤인’은 남자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만큼이나 서브남주 구동매의 매력은 상당하다. 무엇보다도 구동매의 사랑은 단순한 연모라기 보다 애증에 더 가까워 보는 사람이 안쓰럽다. 특히 신분차이에서 오는 경멸과 애틋함이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구동매의 사랑을 더 짠내나면서도 위태롭게 만든다. 정말이지 존재만으로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서브남주다.
후, 드디어 마지막이다. 나의 ‘고청명(이도현)’ .
호텔델루나를 보면서 “아니, 얘는 도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서야 나타난거야”라며 환호하게 만든 자가 바로 고청명이다. 무려 1300년에 걸친 지고지순한 사랑. 본래 내가 시대극, 사극을 지나치게 좋아하는데, 이 녀석이 “누이”라고 할 때마다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지금도 “나대지마, 심장아”를 외치며 글을 쓰고 있다.
능글맞은 언행과 자상함을 탑재하고 있고, 슬쩍슬쩍 보여주는 츤데레적인 면모까지 캐릭터 성격 자체가 완벽한데. 더불어 1300년이라는 시간동안 죽을 힘을 다해 만월의 곁에 있었다는 것 설정 자체가 그냥 맴찢이다. 기왕이면 다시 환생한 청명의 모습도 보고싶었는데 아쉬울 따름. 죽어서도 떠나지 못했던 순애보가 마음 아프고, 그래서 더 보듬어 주고싶었던 서브남주가 고청명이다.
tvN,, 제발 고청명 환생 버전 드라마 만들어주세요.
서브남주에 대한 나의 애정을 길게 드러내봤다. 어쩐지 마음이 더 몰캉몰캉한 게 연애를 막 시작한 것 마냥 설레고 좋다. 안타깝게도 나의 리스트에 오르지 못한 수많은 서브남주가 있다. 예컨대 '킬미힐미 오리온'이나, '응답하라1994 칠봉이' 등 말이다. 아쉽지만 다음에 또 서브남주에 대해 글을 쓸 때, 꼭 넣으려 한다. 언제 다시 쓸지는 모르겠지만.
나처럼 서브남주만 골라골라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 많다고 본다. 여러분들의 최애 서브남주가 누군지도 궁금하다. 기왕이면 댓글로 남겨서 공유해주길 바란다. 나도 정주행으로 따라갈테니까.
그럼 안녕!
스포티파이 드디어 국내 상륙 그러나? (0) | 2021.02.08 |
---|---|
어쩌면 긍정적인 신호탄 (영화 <승리호> 리뷰) (0) | 2021.02.08 |
오늘도 우리는 입등반 한다 (팟캐스트 ‘씨네마운틴’ 리뷰) (0) | 2021.01.31 |
20년만에 빠진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 리뷰 (반지원정대, 두 개의 탑, 왕의 귀환) (0) | 2021.01.23 |
[드라마 다시 보기] 엘리트 검사는 왜 사형수가 되었나? 드라마 ‘피고인’ (0) | 2021.01.23 |
내 사랑이 설 곳은 어디에 (코로나 시대의 독립영화 보기) (0) | 2021.01.23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