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개봉, 현재 관객 수 8,421,499명(리뷰를 쓰고 있는 시점, 8월 27일 기준) 곧 900만을 보고 있는 엑시트. 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 영화! 라는 생각에 앞서서 관람하고 왔다. ‘흥행되면 좋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한국의_한국에의한_한국을위한_한국맞춤형코미디
엑시트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취준생인 용남이(조정석)이 어머니의 칠순 잔치로 동아리 후배 의주(윤아)가 일하는 연회장에 갔다가 유독가스에 의한 재난이 발생하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다. 개인적으론 흔한 재난 영화겠거니, 하지만 코믹스러운 면이 있겠지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봤다가 앗! 하고 나온 영화다. 코미디가 너무 한국이라서 놀랬다. 한국이 아니라면 일어날 리 없는 일들이나 웃기지 않았을 장면들이 많다. ‘현실 밀착형’ 영화에 놀랐다. 그래서 몇 가지 항목으로 뽑아봤다.
1. 취준생의 현실
- 취미는 없다!
용남이의 누나가 용남이를 패며 마구마구 잔소리하고 옷장에서 클라이밍 용품을 발견한다. 그리곤 이런 거 갖다 버리라는 더 큰 소리를 내는데 취준생의 생활영역은 보존되지 않고 취미마저 까이는 현실이 보였다.
- 이것만 지나면 다 잘 될 거야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그 말. ‘괜찮아, 이것만 지나면 다 잘 될 거야’하며 취준생인 용남을 보면 다들 그렇게 얘기했다. 그런 말 하는 마음 알지만 뾰로통해지거나 시니컬해지는 용남이의 반응까지 완벽.
- 왜 내 말은 안 믿어줘요?
재난 상황 중에서도 환자가 발생한 극한 상황이지만 용남이가 ‘옥상으로 가자’하는 말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 내 말 좀 믿어달라는 애절한 용남이의 말에도 행동하지 않던 사람들이 재난 문자가 오자마자 뛰어나갈 때 눈물이 찔끔 흐를 뻔했다.
2. 한국의 ‘재난’ 영화
- 재난? 그게 뭐야
식당에서 동시에 울리는 재난 문자 알림음. 그리고 보자마자 집어넣는 한국인들. 그리고 아직 우리 동네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용남이의 말까지 완벽한 한국인의 일상을 봤다. 재난으로 유독가스가 피어올라 생긴 기현상을 본 사람들. 사람들은 그게 재난이란 생각도 없이 셀카를 찍었다. 늦은 밤 남아있던 학생들의 건물도 그랬지만 온갖 건물의 옥상은 잠겨있다는 것까지 이렇게나 재난에 깜깜하다고 보여준다.
3. IT 강국(?) 한국
- 핸드폰, 그건 내 신체다.
용남이가 위험하게 벽을 타고 올라가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창문 밖으로 몸을 내민 사람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모두가 상황을 아는 걸 보고 아? 하고 웃음이 터졌다. 옥상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도 SNS로 헬기 구조를 알아차리고 구조요청 신호를 핸드폰으로 한다. 용남이가 구조되고 난 후 만난 엄마의 손에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 이 모든 게 ‘진짜 한국인 리얼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 드론과 구조의 연결고리
재난 현장으로 보낸 드론과 드론을 통한 영상 생중계. 영상 생중계와 드론만으로도 옳다구나 했는데 이어지는 유튜브 BJ들의 영상 생중계를 또 생중계하는 모습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너무, 너무 한국이다.
#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엑시트를_교과서로
감독이 재난의 희생과 참담함을 소비하고 싶지 않고 엑시트의 분위기상 몰입을 깬다고 생각해 재난의 규모나 상황을 되도록 담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재난 영화에서 고통스럽다기보단 용남이랑 의주를 응원하면서 볼 수 있었다. 재난대피에 필요한 꿀팁들도 그래서 눈에 더 띈 것 같다. 엑시트를 들여다보면 재미있게, 기억나게 팁들이 박혀 있다.
- 재난 상황에 급한 환자를 들것에 실어야 한다면? 근데 들것이 없다면? 대걸레 두 개를 이용해 만들 수 있다.
-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시각 장애인 보도블록을 이용해 이동하는 용남 (+ 지하철역에서 안전용품 찾는 방법)
- 기억하세요, 따따따 따따 따 따따따. 재난 상황에 구조요청 신호
- 방독면에 존재하는 시간과 필요한 필터, 쓰레기봉투로 온몸을 감싸서 피할 수 있다는 정보
- 방독면을 벗을 땐 그냥 벗지 말고 선풍기 등의 환기를 거쳐 벗어야 한다는 점
- 건물 옥상이 열려 있어야 하는 이유. 건설 현장에 추락 방지망이 있어야 하는 이유. 항시 어디든 EXIT를 알아야 하는 이유.
내가 생각나는 것만 적었는데도 이 정도다. 더군다나 좋은 점은 이런 사실들이 외우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박혔다는 점이다. 그것도 웃어가면서. 여기에 설명을 추가하고 좀 더 자세하게 만든 교육용 자료가 있다면 엑시트는 재난 대피 교육자료로 충분하지 않을까?
비록 나는 엑시트를 보고 나온 후 든 첫 생각이 ‘나는 죽었군’이지만 즐겁게 보고 나왔다. 재난 영화인데 마음의 슬픔이 덜했고 감독이 바랬듯 두 주인공이 탈출하길 응원하면서 봤다. 마지막에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나오는 노래 슈퍼 히어로는 정말 이 영화와 딱 맞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인을 배려하고 끝까지 의지를 놓치지 않는 두 주인공이 떠올랐다. 그 노래를 즐겁게 부르면서 영화관을 나서는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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