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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알못의 주말농장 이야기 : 주말 농부의 기쁨과 슬픔

LIFE

by 오즈앤엔즈(odd_and_ends) 2020. 9. 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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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알못(사를 지 하는 사람) 시리즈를 쓰고 있는 주말 농부 슝슝이다.


3개월 만에 돌아온 농알못 시리즈다. 그간 밭을 포기하고 있던 건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농알못 시리즈를 쓰는 게 많이 밀려났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농작물을 보며 빨리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제야 올리게 되었다. 전 편에선 주말농장의 시작과 농작물 관리 방법, 상추를 수확하면서 끝났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는 동안 밭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농작물과 그걸 지켜보는 나


친구와 나는 4평짜리 작은 밭에 꽤나 많은 작물을 심었다. 


5월은 심은 작물들이 자리를 잡고 자랄 준비를 하는 단계라면, 6월은 식물이 본격적으로 자랄 때다. 너른 흙에서 뜨거운 해와 비바람을 견뎌가며 쑥쑥 자란다. 아침저녁으론 조금 선선하지만, 낮은 해가 무지 뜨겁다. 일주일에 한 번 가서 물 주는데 갈 때마다 흙이 바짝바짝 말라있다. 비도 잘 안 오고 일주일에 2번은 가야 농작물이 말라죽지 않을 것 같았다. 백수 시절인지라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물을 주고 잡초도 뽑았다. 덕분에 밭은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 4평 밭에 알차게 자리 잡은 농작물 (사진=슝슝)
▲ 다품종 소량생산 (사진=슝슝)

 


씨앗부터 시작한 바질, 루꼴라, 고수는 작은 떡잎이 나오더니 어느새 주변에만 가도 고유의 향을 풍겨댔다. 잡초를 뽑고 다듬으며 힘들다가도, 주변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에 힘든 것도 금방 사라졌다. 저런 허브류만 향기가 나는 게 아니었다. 정말 놀랍게도 고추나무에선 고추 냄새가, 토마토 나무에선 토마토 냄새가 미세하게 풍겨져 나온다. 향기를 맡으려고 한번 만질 거 두세 번씩 만지고 향기에 취했었다.

 

 

▲ 이렇게 작은 바질도 진한 향이 났다 (사진=슝슝)
▲ 왕 크니까 왕 맛있는 바질 (사진=슝슝)

 


농작물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꽃이 피면 밭에 벌들이 많아진다. 벌들의 도움으로 수분이 되고 나면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맺힌다. 우리 밭은 일찍이 나는 꽃들은 다 잘라버려서 다른 밭에 비해 늦게 열매가 열렸다. 처음 토마토가 열린 걸 보고 얼마나 기쁘던지. 꼭 모자를 쓴 것 같은 귀여운 모습이 신기해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는지 모른다. 토마토뿐만 아니라 고추와 가지에서도 매주 열매가 열리고 커지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이번 주는 얼마나 자랐을지 상상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웠다.

 

 

▲ 귀여운 모자를 쓴 방울토마토 (사진=슝슝)
▲ 대추방울토마토라 많이 커졌다 (사진=슝슝)
▲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사진=슝슝)
▲ 이렇게 작은 가지도 (사진=슝슝)
▲ 이렇게 커진다^^ (사진=슝슝)

 


옥수수도 키가 쑤욱 커지더니 벌들이 한참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작은 옥수수가 생겼다. 옥수수수염이 핑크빛으로 익고 나서 말라비틀어지면 옥수수를 수확하면 된다. 어서 수염이 말라비틀어지기만을 기다렸다.

 

 

▲ 키가 쑥 컸다 (사진=슝슝)
▲ 이 수염이 말라비틀어지면 옥수수를 수확한다 (사진=슝슝)

 


땅에서 나오는 뿌리채소들도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라고 있다. 비트는 솎아낸 뒤 땅에 심고 물을 안 주고 집에 돌아왔었다. 물이 고팠던 비트는 몇 주를 시들시들했다. 몸살을 앓던 비트가 자리를 잡고 나니 쑥쑥 크기 시작했다. 상태가 좋았던 비트는 제일 먼저 왕 주먹만큼 커져서 수확했다. 당근도 모양은 영 이상하지만... 땅속에서 잘 자라주고 있다. 보랏빛 비트도 너무나도 귀여운 자태로 자라고 있다. 

 

 

▲ 열심히 크고 있는 비트 (사진=슝슝)
▲ 비트로 피클 만들어 먹었다 (사진=슝슝)
▲ 궁금해서 뽑아본 당근도 열심히 자라는 중 (사진=슝슝)
▲ 튼실한 콜라비 (사진=슝슝)

 

수확의 기쁨

7월은 열매가 익는 시기다. 뜨거운 해를 받으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자그마하던 열매도 일주일이면 쑥 커져있다. 특히 가지가 효자다. 가지 나무 2그루에서 매주 가지 2개 이상은 가져갔다. 토마토는 따는 즉시 대충 흙을 털어내고 입으로 가져간다. 정말 맛있다. 내가 키워서 맛있는 게 아니라 정말~ 맛있다. 대추방울토마토가 정말 잘 익어서 맛있었다.  내년에도 대추방울토마토는 꼭 심을 예정이다.


올해 정말 운이 좋았던 건 병충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밭을 꾸리는 친구의 토마토는 병에 걸렸다. 가지에 매달린 토마토가 죄다 까맣게 썩어들어간다고 했다. 고추나 토마토는 습하면 병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때까지 큰일 없이 잘 자라기만 했다. 이때 까진 말이다...

 

 

▲ 수확한 농작물 (사진=슝슝)
▲ 수확한 농작물 (사진=슝슝)
▲ 흐뭇하다 (사진=슝슝)

 


역대 최장의 장마

8월이 왔다. 7월 중순부터 날이 흐리고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됐다. 처음 며칠은 비가 오니 물을 안 줘도 된다는 생각에 그저 신났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이 많아질수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비 안 오는 날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가 되니 농작물들의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비가 몇 주째 왔을까, 새벽 일찍 도착한 밭의 흙이 다 유실되었다. 분명 반쯤 땅에 심어져있던 비트들은 그냥 나뒹굴고 있다. 토마토는 다 떨어져 썩고 있었고, 고추는 잎이 시들시들했다. 청양 고추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 밭에 나뒹굴고 있는 비트 (사진=슝슝)
▲ 가지는 물론 열매도 썩고 있다 (사진=슝슝)

 


비가 하도 많이 와서 옥수수는 다 썩어버렸다. 옥수수 뿌리도 아니고 열매가 썩다니... 처음에 잘못 본 줄 알았다. 양배추도 하나는 괜찮았지만 하나는 완전히 썩어버렸다. 그렇게나 잘 자라던 가지도 떨어져 썩고 있었다. 하나 수확해온 가지도 집에서 잘라보니 속부터 물러지고 있었다. 땅 위의 작물이 이지경인데 땅속에 있는 당근은 오죽할까. 당근이 아니라 홍시를 뭉개놓은 줄 알았다.

 

밝고 따스했던 밭은 축축하고 썩은 내가 났다. 비가 안 와도 문제지만... 너무 많이 내리는 것도 문제였다. 불과 며칠 전까지 잘 자라던 농작물이 다 썩어버린 걸 보니 너무 속상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내리는 비를 막을 능력이 내겐 없다. 썩은 작물을 뽑고 치우는 동안 속상한 마음이 계속 커졌다.

 

 

▲ 썩은 옥수수 (사진=슝슝)
▲ 반쯤 썩은 양배추 (사진=슝슝)
▲ 물러터진 가지 (사진=슝슝)
▲ 홍시가 된 당근 (사진=슝슝

 

비온 뒤 맑음

며칠 내내 속상했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 아직 8월이고 농장 계약이 끝나는 11월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살아남은 몇 개만 빼고 다 갈아엎은 밭에 새로운 작물을 심기로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7월 말에 들깨, 알타리, 고구마를 심으려고 했다. 기나긴 장마에 계획보다 2주나 늦게 시작해 심을 것이 조금 바뀌었다. 


들깨(다행히 시장에서 모종을 팔고 있었다), 쪽파, 아욱, 열무, 부추(차이나벨트)를 심기로 했다. 그리고 친구가 미리 집에서 싹을 틔워둔 옥수수와 상추도 차차 심기로 했다.

 

 

▲ 새로 심을 들깨와 씨앗 (사진=슝슝)

 


싹 갈아엎은 밭에 균일하게 고랑을 냈다.  장마가 끝났다고 그새 흙이 포슬포슬해졌다. 포슬포슬한 흙 위에 준비한 씨앗들을 심었다. 찬찬히 심다 보니 4월, 처음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맨손으로 흙은 만지던 날이 생각난다. 따듯하고 촉촉하고 보드라운 흙을 만지며 기분 좋은 힘을 얻었던 게 되살아났다. 그러자 아쉽고 속상했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심었던 씨앗은 일주일 만에 예쁜 싹을 틔워냈다. 황량하기만 했던 밭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자연은 이렇게 다시 시작할 힘을 주었다. 이래서 내가 피곤해도 토요일 새벽부터 농장에 오는가 보다. 부디 다음 농알못 시리즈는 즐거운 일만 가득가득 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새로 심은 작물이 가을볕에 잘 자라길 바란다.

 

▲ 예쁘게 고랑을 내고 씨앗을 뿌렸다 (사진=슝슝)
▲ 쪽파가 빼죽 올라왔다 (사진=슝슝)
▲ 귀여운 열무 새싹 (사진=슝슝)
▲ 엄청나게 맛있다는 가을 옥수수 (사진=슝슝)
▲ 새로 시작하는 밭이 어서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 (사진=슝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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