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진지하거나 꺼림칙하거나, 생각이 많아질 것 같은 작품은 피하는 편이다. 나에게 영화는 ‘오락거리’나 ‘도피처’의 성격이 강하다. 생각 없이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고 오면 그걸로 치유되는 시간으로 여긴다. 그렇게 영화를 즐긴다. 그래서 코믹, 애니메이션, 액션류의 영화를 잘 보는데 그 중 디즈니 영화를 즐겨본다.
알라딘이 개봉했다는 소식에 보러 갈까 하고 있다가 이래저래 미뤄두고 있었다. 몇 주가 지나고 아직도 극장에 걸려있나? 싶었더니 꽤 많은 시간표에 놀라며 알라딘을 예매했다.
나는 사실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스토리보다 이미지가 각인되어있다. 디즈니의 만화로서의 머리 위에 조그만 모자를 얹고 요술 양탄자를 타며 똑같은 모자를 쓴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민트색의 복장을 입은 공주를 양탄자에 태운 이미지밖에 기억이 안 나더라. 다 아는 건가. 어릴 적에 봤던 거라 다들 이렇게 스토리를 정확히 모를 텐데라고 생각해 친구한테 너 스토리 기억나? 했더니 다 기억난대서 머쓱해지긴 했다. 하지만 스토리를 모르는 덕분에 앞 이야기를 몰라서 남들보다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나처럼 기억이 안 나는 사람들을 위해 짤막한 스토리 요약을 해보았다. 좀도둑이던 알라딘은 우연히 공주인 자스민을 만나게 되고 자스민과 결혼하기 위해 자파의 꼬임에 빠져 마술램프를 찾으러 갔다가 램프의 요정 지니를 만나고 소원을 빌게 되는 이야기다.
동화나 만화의 실사화 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이게 실사화가 돼? 라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아닐까 싶다. 알라딘에서도 역시 젤 우려했던 부분은 역시나 램프의 요정 지니. 과연 이걸 실사화하는 게 가능할까? 도대체 누가 연기를 할까 했더니 그 자리에 윌 스미스가 캐스팅되었다. 외국영화를 잘 안 보는 나에게 윌 스미스는 맨 인 블랙 이미지가 다였기 때문에 ‘그저 재밌겠네’라는 인상이었다. 그래, 재미는 있겠는데 괜찮을까? 가 머리에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그저 지니의 등장씬이 조금은 두려웠다.
그러나 지니는 등장하자마자 내 두려움을 최고치의 즐거움으로 바꿔주었다. ‘Friend like me’를 부를 때 영화 전체에서 제일 디즈니스러움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지니는 윌 스미스지. 그럼 그럼. 어쩌면 진짜 지니가 사람이 되어서 윌 스미스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나긴 대사들을 마치 진짜인 듯 해내었다. 이렇게나 수다 많고 장난 넘치는 지니를 누가 소화할 수 있을까. 윌 스미스밖에 없을 듯.
제일 크게 아쉬웠던 점은 처음 인물들의 등장씬이었다. 스토리에서 중심을 이어가는 점이 알라딘이 도둑질을 하든 외면을 바꾸든 알라딘 내면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첫 신에서 알라딘의 내면의 가치는 전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초반부에 알라딘이 도둑질을 일삼는 사람이지만, 내면에 진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각인시킬만한 장면이 없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 자스민을 도와서 자스민에게 사랑에 빠진 사람이란 점은 확실히 각인됐으나 자스민과 둘이 나눈 대화에서도 나는 세상에 대한 한탄만 느꼈을 뿐이었다. 물론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증명한다고 느낄 수 있었지만, 처음에 확실한 한 컷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아쉽게 생각했다. 물론 자스민도 비슷했다. 상인의 물건을 ‘그냥’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자스민. 자스민이 공주인 걸 모르는 상인에겐 이건 무전취식이잖아요. 자꾸 이런 생각이 드니까 초반부에 자스민에게도 알라딘에게도 전혀 호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만화와 똑같이 흘러간 거였지만 현대적 각색이 있었다면 첫 신들을 예를 들어 동전을 조금 지불했으나 악덕 상인에게 걸려 실랑이가 벌어진 자스민을 구하는 알라딘이라는 식으로 조금만 바꾸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그래도 좋았던 게 훨씬 훨씬 많다. 제일 좋은 건 역시 음악이었다. 디즈니는 노래하고 춤추며 이야기를 전하는 전형적인 형식이 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나였다. 당장 기억에 남는 것만 해도 Speechless, friend like me, Prince Ali, A Whole New World 등이 있다. A Whole New World나 Speechless는 벌써 많은 커버 영상들이 유튜브에 깔려있고 발매된 OST 앨범은 음원사이트 대부분에서 순위권에 머물러 있다. 개봉 전 OST를 길거리에서 부르는 배우들의 프로모션 영상도 재밌으니 한번 보기를 추천한다.
알라딘 말고도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 성이 잘 보인 게 가장 좋았다. 더 확고해진 자스민의 성격이나 지니의 캐릭터 성이 특히 돋보였는데, 자신이 술탄이 되길 바라고 그걸 관철하는 자스민이 결국 자질을 보여주고 술탄이 된 게 가장 좋았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자스민을 바라보니 알라딘도 결국 자신의 본질을 잊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니에게 있던 강한 우정(?)도 돋보였다. 여태까지의 주인과는 다른 알라딘을 만나서 인간적인 모습을 맘껏 표출하는 지니의 모습 중 계약을 살짝 비틀어서 알라딘을 구해내고 고마움의 표현을 받는 지니의 모습은 진짜 인간으로서 감정을 전달받은 느낌이 나 좋았다. 그리고 ‘양탄자’와 ‘아부’는 나오는 내내 시선을 잡아 붙들었다. 알라딘보다 도둑질을 잘하는 아부와 모든 이동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양탄자. 둘이서 알라딘도 살리고 알라딘이랑 자스민을 이어주고 모든 스토리를 ‘하드캐리’했다. 진짜 둘 없었으면 알라딘이고 자스민이고 어떻게 됐을까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한 번쯤 생각해볼 것이다. 쓸데없는 망상이지만 나는 지니에게 무슨 소원 세 개를 빌까? 어떤 사람은 소원을 500개쯤으로 늘려달라고 할 거라는데 너무 천재적이란 생각을 했지만, 왠지 규칙 위반 같은 게 걸리지 않을까. 나는 일단 돈에 대한 소원 하나, 내 명줄에 대한 소원 하나, 아주 비현실적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는 초능력 소원하나 이렇게 빌고 싶다. 세 개다 은근히 초능력이나 마법 같은 소원이 될 것 같다. 돈이 계속 나오는 화수분 같은 지갑이라던가 순간이동 초능력 등 결국엔 끝이 없는 소원들. 역시 2019년에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아, 그래도 나한테 램프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 보는 알라딘 리뷰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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