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막막했던 시절이 있었다. 직장만 생기면 다 잘 풀릴 줄 알았는데, 수없이 많은 순간이 좌절과 두려움으로 찾아왔다. 무엇보다 능력의 한계를 마주할 때 가장 비참했다. 쏟아지는 일거리보다 내 결과물에 대해 '네가 그렇지'라는 상사의 한심 어린 메시지가 더 몸서리치게 무서웠으니까.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 자리와 위치를 지키며 버티는 것이었다. 힘들다고 그만두기엔 어렵사리 얻은 일자리가 내게는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직장동료, 친구, 때로는 가족까지도 마음속에서 경쟁자가 됐다.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털어둘 곳을 찾기가 점점 더 녹록지 않았다. 분명 지쳐가고 있었다. 마음으로도 머리로도 이미 알고 있었다. 연일 이어지는 자기 비하는 더욱이 고통스러웠다. 결국, 혼자 견뎌내야 할 부분이라는 점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 고통은 나로부터, 나로 인해 발생한 것이니까. 이때부터였던가 노래가, 책이, 또는 영화가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이전에는 오락적 요소에 좀 더 가까웠달까?)
참 많은 밤을 나를 위로하는 데 썼다. 그때마다 어느 날은 음악이 친구가 되었고, 또 어느 날은 책이, 영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지금 나는 그 시절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러니 지난밤, 나를 위로해준 것들을 이제는 지쳐버린 당신에게 보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지길 바라며.
1. 강민희 <걸음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야근한 후 퇴근길이었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가 바로 강민희의 '걸음마'다. 노래는 물론이거니와 강민희라는 가수조차도 생소했다. 알고 보니 강민희는 '미쓰에스'라는 걸그룹 출신으로, KBS ‘더 유닛’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돌로 데뷔했지만, 제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 없는 이들을 모아 새롭게 데뷔를 시켜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특성상 출연자들의 열정과 절실함을 전달한다. 강민희의 걸음마라는 노래가 더 진솔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녀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노래뿐만 아니라 더 유닛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곡은 강민희가 더 유닛 이후 처음으로 선보인 곡이다. 본인의 진솔한 감정을 담았다. 쉽지 않았던 지난 시간을 거름 삼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2. 보아 <No limit>
어릴 적부터 보아의 팬이었다. 내 학창시절은 그녀의 노래와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가수였다. 당연히 보아가 새로운 노래를 선보일 때면 자연스럽게 찾아 들었다. 타이틀곡 뿐만 아니라 수록곡까지 모두.
'No limit'은 보아의 9번째 정규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타이틀 곡인 'Woman'이 파격적인 도입부 안무로 지나치게 주목을 받은 탓에 상대적으로 수록곡들은 덜 관심을 받았다. 아마 이 노래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자부한다.
유난히 이 노래에 마음이 간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게 여러 가지 감정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를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잠시라도 나, 나를 위해 떠나가볼래. 어디든 상관없잖아. 목적도 없이 종착지도 없이 No plan. 가보는 거야 언제 또 이래 보겠어. 우리 고민하지 마. 이기적이라 해도 I don’t care' 이라는 부분이 아닐까.
단순히 떠나고 싶을 때 들어도 좋고, 내 한계점을 더욱 높이고 싶을 때 들으면 좋다. 나 역시도 업무가 지겨워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순간마다 이 노래를 들으며 감정을 달랬다. (안타깝게도 오피셜 영상이 없어 이 곡은 영상은 넣을 수 없었다)
'저 청소 일 하는데요?'는 가벼운 일러스트였다. 아니, 생각해보니 일러스트 보다는 웹툰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어쩌면 지금, 이 책을 읽은 것이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진심 어린 위로를 받았다. 그 어떤 강요도 위선도 없다. 그저 '나는 이렇게 살아'라고, 담담하게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지금 너의 삶은 잘못됐어'라거나 '이렇게 살아야 해'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어떠한 종류로도 질책이 없다. 무엇보다 지금 하는 내 고민에 대해서 어설픈 훈계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무늬뿐인 위로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이 책은 인생 노잼, 무엇을 해도 참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이 찾아오는 시기인 20대 후반, 30대 초반에게 어울린다. '저 청소 일 하는데요?'에는 적당한 대리만족을 통한 위로와 왜인지 계속해서 현실을 떠오르게 하는 묘한 능력이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꽤 유명한 영화다. 친구로부터 추천받아 알게됐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사랑 얘기쯤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직접 영화를 보니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인생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영화였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은 할리우드에서 꽤 성공한 각본가 '길'(오웬 윌슨)‘이다. 길은 약혼자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와 파리를 찾는다. 어느 날 밤 12시 약혼자 이네즈를 두고 홀로 파리 밤거리를 배회하던 길은 우연히 종소리와 함께 나타난 차에 올라타게 된다. 그리고 길은 본인이 선망하던 1920년대를 가게 된다. 그 날 이후 길은 매일 밤 1920년대로 떠나고, 평소에 동경하던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어 꿈 같은 시간을 보낸다.
평소 길은 1920년대 파리를 끊임없이 동경했다. 자신이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며 세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1920년대에서 만난 피카소의 연인 '아드리아나'는 현재, 즉 길이 선망하는 1920년대를 불만족스러워하며, 1890년대를 동경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아드리아나와 길은 마차를 타고 1890년대로 떠난다.
1890년대에 도착한 그들의 대화 내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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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하지만 20년대는요?
아드리아나 : 그건 현재잖아요. 지루해요.
길 : 그건 내 현재가 아니에요. 난 2010년에서 왔어요.
아드리아나 : 무슨 뜻이에요?
길 : 난 당신에게 들린 거예요. 우리가 지금 1890년대에 왔듯이. 난 내 현재에서 도망치려 했죠. 당신이 당신 시대에서 '황금시대'로 도망치려 하듯.
아드리아나 : 정말 20년대를 황금시대로 보진 않죠?
길 : 나에겐 그렇죠.
(중략)
길 :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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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핵심은 길의 저 대사 한마디에 함축돼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지금은 늘 불만스러운 법이라고. 미드나잇 인 파리의 결말을 보고 난 후에는 의지를 얻었다. 누군가에게는 황금시대가 될 나의 지금, 이 불만 가득한 현재를 잘 살아보고 싶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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