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 꿈은 잡지사 에디터였다. 패션지 에디터가 되겠다며 패션디자인과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 미술학원도 다녀봤고, 피처 에디터가 되겠다며 언론홍보학을 전공으로 삼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처음으로 '하퍼스 바자'라는 잡지를 보고 에디터를 꿈꿨던 순간부터 대학 시절까지는 내 나름대로 에디터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막상 에디터가 되기 위해 인턴 자리를 알아봤지만, 자리를 구하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50만 원이 채 안 되는 월급으로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버텨낼 여력이 없었다.(잡지 에디터 채용은 해당 자리가 날 때까지 인턴을 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수행과도 비슷한 삶이랄까?)
결국, 현실의 벽 앞에서 잡지사가 아닌 다른 매체를 선택했다. 덕분에 '기자'라는 타이틀로 에디터는 아니지만, 비슷한 언저리에서 일을 해왔다. 지난 5년간 나는 패션이 아닌 술을, 피처가 아닌 스트레이트 기사를 썼다. 기자 생활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단지, 에디터라는 직업에 계속 미련이 남을 뿐.
이루지 못한 꿈은 미련을 쌓아갔고, 점점 더 삶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28살이 된 지금에 와서 에디터에 도전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걱정과 두려움만 늘었나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했다. 호기롭게 잡지사 인턴 채용정보를 찾다가도 막상 지원서류는 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날이 늘어갔던 시기, 컨셉진을 만났다. 조금 과장하자면, 제멋대로 날뛰던 마음을 다독여 준 것이 바로 컨셉진이었다.
컨셉진은 잡지다.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한다. 컨셉진을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겨울, 1월이었다. 당시 이미 퇴사 날짜를 받아둔 상항이었고, 불분명한 거취는 부담을 넘어 나를 압박했다. 주변 사람들 말에 의하면 이 시기에 나는 불안하다 못해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사고를 쳐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친구 하나는 내게 손바닥만 한 작은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잡지라는 말과 함께. '이게 잡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작은 사이즈였다. 그리고 잡지 표지에는 'conceptzine'이라고 적혀있었다. 이것이 바로 컨셉진과 나의 첫 만남이다.
컨셉진은 매번 다루는 주제가 다르다. 친구가 내게 줬던 컨셉진은 때마침 '일'이 주제였다. 잡지 첫장에는 주제에 걸맞게 '당신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당시에는 괜히 이 문장 하나에 울컥해서 한참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 센치했다.
컨셉진은 다양한 관점에서 일에 대해 이야기 했다. 덕분에 읽는 나도 다양한 관점에서 내 일을, 내 꿈을 계속해서 생각하게 됐다.(안타깝게도 '일'을 주제로 했던 컨셉진은 취업으로 고민하던 다른 친구에게 선물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것 같다. 주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컨셉진을 읽었는데, 너무 집중해서 읽다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컨셉진을 다 읽은 후에는 어쩐지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이 좋았는지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잡지 한 권으로 위로를 받고, 미련에서 벗어나 담담하게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그 결과, 내 선택은 용기가 생길 때까지 꿈을 소중하게 묻어두는 것이었다.) 이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컨셉진을 꾸준히 보고 있다.
컨셉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컨셉진의 슬로건은 '당신의 일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집니다'이다. 이에 걸맞게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을 아름답게 풀어낸다. 독특하게도 컨셉진에는 유명인이나, 값비싼 명품이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이 점 역시 조금 놀라웠다. 대체로 잡지는 기사만큼이나 많은 광고와 유명인의 인터뷰 혹은 화보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컨셉진은 일상, 삶은 얘기하는 데 있어 담백하고, 깨끗하며, 솔직하다. 유명 아이돌 대신 누군가의 엄마, 아빠가 혹은 미모의 여배우 대신 섬마을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진짜 우리 주변, 진심이 담긴 일상을 전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풀어주기 때문일까. 컨셉진을 읽으면 아무것도 아닌 내 일상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다짐하게 된다. '나도 컨셉진처럼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지'라고.
컨셉집은 단순히 잡지만 만드는 곳이 아니다. 컨셉진의 김경희 편집장에 따르면, 컨셉진은 '일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때문에 컨셉진은 잡지뿐만 아니라 굿즈도 만들고, 강의도 진행한다.
최근에 직접 컨셉진에서 운영하는 '에디터 스쿨'에 참여했다. 총 5주간 진행하는 수업이다. 에디터 스쿨은 에디터를 비롯한 각종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본기를 가르쳐 준다. 나 역시도 콘텐츠 기획에서 완성까지의 과정이 궁금해 수업에 참여했다. (내심 이 과정을 통해 잡지 에디터의 꿈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싶었던 마음도 있다.)
강의는 잡지를 만드는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컨셉진의 김경희 편집장이 직접 수업을 진행한다.
* 커리큘럼
1주: 에디터, 콘텐츠의 기본
2주: 글쓰기
3주: 촬영
4주: 인터뷰
5주: 총정리
실제 수강생들의 과제에 피드백을 주는 수업이기 때문에 수업시간은 유동적인 편이다. 가장 수업시간이 길었던 2주 차 수업은 밤 11시 반이 넘었고, 가장 짧았던 마지막 수업은 10시 반에 끝났다. 이 때문에 김경희 편집장은 첫 수업에서 공지했다. 수업 이후 약속을 잡지 않는 편이 좋다고.
결론만 말하자면, 이 수업은 대만족이다. 오히려 수업이 5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울 정도. 분명 콘텐츠에 대한 강의인데, 자아나 긍정, 행복에 대해 느끼고 왔다고나 할까? 나에 대해서 조금 더 단단해진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아직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도 조금 더 분명하게 알게됐다.
잘 모르겠다고? 백문이 불어일견. 백번 말해봤자 소용없다. 컨셉진 에디터 스쿨이 궁금하다면 직접 수업을 들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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