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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마틴은 돌고, 또 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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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즈앤엔즈(odd_and_ends) 2020. 3. 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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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꽤나 인상 깊은 첫인상이었다. 매끈하고 반듯한 느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매무새에 한순간 빠져들었다. ‘멋지다'라는 말 외에는 형용할 수 있는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살짝 오그라들지만, 영국의 부츠 브랜드 ‘닥터 마틴(Dr. Martens)’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이다.

 

 

 

 

 

▲닥터마틴 로고(사진= 공식 홈페이지)

 

 

닥터마틴을 안지는 꽤 오래됐다. 10년 전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시절 처음 봤으니. 그 무렵 닥터마틴은 제법 인기가 많았다. 유명 연예인들 사복 패션에서 심심치 않게 닥터마틴을 볼 수 있었고, 이 때문인지 고개를 돌리면 너 나 할 것 없이 ‘닥터마틴 모노'를 신고 있을 정도였다.

 


고백하자면 닥터마틴 부츠가 갖고 싶지만, 체형 상의 문제를 비롯한 갖가지 핑계를 대며 피하게 된다. 그저 사진만 보며, 대리만족 하고 있을 뿐이다. 즉, 마음은 열렬히 좋아하는데, 막상 용기를 내지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덕분에 시간이 흐를수록 닥터마틴에 대한 나의 시각은 일종의 동경(?) 같은 것으로 변모했다. 늘 구매계획만 세우면서 계속 닥터마틴에 대해 파는 것도 다 나의 동경과 미련이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쯤으로 보면 된다.

 

▲닥터마틴(사진= 공식 홈페이지)

 

 

진짜 의사가 만든 신발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닥터마틴은 실제로 의사이자, 군인이었던 ‘클라우스 메르텐스(Klaus Maertens)’가 만들었다. 메르텐스는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의사로 복무했다. (닥터마틴은 메르텐스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읽은 말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닥터마틴이 사실은 독일 태생인 것.)

 


많은 물건이나 브랜드가 그러하듯 닥터마틴도 ‘우연’한 계기로 만들어진다. 어느 날 메르텐스는 스키를 타다가 발을 다친다. 당시 군인이었던 메르텐스는 어쩔 수 없이 군화를 신고 활동해야만 했고, 밑창이 딱딱하고 불편한 군화 때문인지 통증은 더욱 극심해졌다. 메르텐스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기존 군화에 사용되는 딱딱한 가죽보다 편하고 뛰어난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 메르텐스가 고안한 것이 바로 ‘에어쿠션’이다.

 

▲닥터마틴(사진= 공식 홈페이지)

 


메르텐스는 밑창에서 중창에 해당하는 부분에 공기가 들어찬 공간을 만든다. 이로 인해 딱딱하기만 했던 신발 밑창에 쿠션감이 더해진다. 이것이 바로 ‘에어쿠션’이다. 현재 ‘나이키’의 에어맥스의 에어쿠션 밑창 역시 따지고 보면 닥터마틴에서 시작한 셈이다. 일명 '예쁜 쓰레기', 예쁘지만, 발이 아픈 신발로 명성이 자자한 닥터마틴이 에어쿠션의 원조라는 점은 상당히 의외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메르텐스는 대학시절 친구인 기계 공학자 ‘허버트 펑크(Herbert Funk)’를 찾는다. 자신이 만든 테스트용 신발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동업을 시작하고, 새로운 형태의 부츠를 제작한다. 이것이 바로 ‘닥터마틴’의 시작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닥터마틴’이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다.)

 

▲닥터마틴(사진= 공식 홈페이지)

 


메르텐스와 펑크는 군대에서 버려진 재료를 활용해 만들었다. 밑창 고무는 독일 공군의 비행장에서, 신발 끈을 넣는 구멍 ‘아일렛’은 군용 재킷에서 떼어냈다. 제일 중요한 가죽은 군 장교들이 입는 바지에서 가져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본격적으로 판매에 나선 메르텐스의 ‘에어쿠션 워커’는 상당한 인기를 얻는다. 기존의 딱딱한 워커와 달리 발이 편안하고, 군대에서 나온 재료를 사용한 덕분에 내구성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격 역시 착했다. 이 때문인지 초창기 닥터마틴은 험한 일을 주로 하는 건설이나 공장 노동자들이 주로 선호했다.

 

▲닥터마틴(사진= 공식 홈페이지)

 

 

자유와 청춘을 대변하기까지

 


1960년에 접어들자 닥터마틴은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우선, 영국 회사 ‘그릭스(Griggs)’가 메르텐스로부터 ‘에어쿠션 워커’에 대한 특허권을 사들인다. 이후 그릭스가 영국에서 마틴 부츠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닥터마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요소가 확립된다. ‘닥터마틴’이라는 브랜드 명칭 역시 이 시기에 생겨난다. 

 

▲닥터마틴(사진= 공식 홈페이지)
▲닥터마틴(사진= 공식 홈페이지)

 


그릭스는 기존 제품과 더불어 블랙과 핑크 버전을 추가했고, 닥터마틴을 상징하는 노란 스티치를 넣었다. 또, 에어쿠션 밑창에는 ‘에어 웨어’라는 상표를 붙인다. 이 모든 요소를 집약해 만든 제품이 바로, 1960년 4월 1일 탄생한 ‘닥터마틴 1460 8홀 부츠’다. 현재까지도 닥터마틴 1460 8홀 부츠는 닥터마틴의 시그니처로 여겨진다. 


그릭스가 새로운 닥터마틴을 출시했던 1960년부터 영국을 필두로 전 세계서 펑크와 록 음악이 전성기를 누렸다. 이때 가난한 영국의 뮤지션들이 저렴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닥터마틴을 신었다. 훗날 이 같은 뮤지션들이 유명해지면서 이들이 신고 있던 닥터마틴 부츠 역시 인기를 누린다. 펑크와 록이 닥터마틴을 업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닥터마틴을 떠올리면 펑크와 록이 빠지지 않는다.

 

 

락이나 펑크 음악이 사회고발적이고, 저항의 메시지를  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까. 닥터마틴 부츠 역시 당시 노동자를 옹호했던 ‘스킨헤드’나 시대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펑크족’같은 비주류, 일명 ‘서브컬처’를 중심으로 확산해 나갔다. 이들에게 닥터마틴은 주류에 대한 반항이자, 자유와 청춘을 의미했다.

 

▲닥터마틴(사진= 공식 홈페이지)
▲닥터마틴(사진= 공식 홈페이지)

 

 

클래식과 모

 


서브컬처를 통해 확산되면서 인기를 얻고, 1970년에는 닥터마틴이 영국 경찰의 공식 유니폼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딱 거기까지다. 닥터마틴은 비주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지만, 수년간 주류 패션으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닥터마틴이 스킨헤드나 펑크족,  뮤지션이나 신는 신발쯤으로 여겨졌다.

 

 


지금처럼 닥터마틴이 주류 패션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클래식은 유지하되 트렌드를 추구하는 브랜드 전략 때문이다. 닥터마틴은 60년간 같은 디자인을 제품을 계속해서 출시하면서도 여러 디자이너나 브랜드, 유명 스타들과의 협업을 중요시한다. 닥터마틴의 뮤즈인 ‘아기네스 딘'과의 협업, ‘요지 야마모토'와 꼼데 가르송의 ‘레이가와 쿠보'같은 유명 디자이너와의 콜라보가 대표적인 예다.

 

 

▲닥터마틴(사진= 공식 홈페이지)

 


자유와 청춘의 모습처럼 닥터마틴은 도전에 있어 두려움이 없고, 늘 열정적이다. 같은 디자인의 닥터마틴 부츠더라도 다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다양성 말이다. 이는 소비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래서 누가 착용하느냐에 따라 다 다른 닥터마틴이 된다. 예컨대, 누군가에게는 닥터마틴이  댄디함을 상징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유니크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

 


결론, 내게 닥터마틴은 클래식한데 또 모던한 존재다.(당신의 신발장 속 닥터마틴은 또 다른 의미겠지만) 클래식과 모던이라니. 내가 말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다. 하지만 닥터마틴에 대입하면 이 두 단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아이러니하지만, 이게 또 닥터마틴의 매력이다.


조만간 살 빼고 꼭 닥터마틴 부츠도 신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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