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처음 제대로 가본 건 술을 먹을 수 있게 된 후였다. 드라마에서나 사람들의 얘기에서나 언제나 한강은 캔맥주를 마시기 위한 곳처럼 보였다. 왠지 나도 슬프거나 상처를 받거나 하면 혼자 여기 와서 맥주를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내가 인식했던 한강은 그랬다.
실제로 가본 한강은 너무 별것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깔끔하게 정돈된 공원에 널린 편의점, 앞에 한강 물까지 너무너무 그냥 공원이었다. 생각보다 사람은 더 많았고 혼자 올 분위기는 아니다 싶었다. 가령 물을 보러 어딜 가고 싶다면 가까우니 가끔 생각나겠네 싶을 뿐 아무것도 없는 공원이었다.
그 뒤로도 친구들과 돗자리 펴고 술을 먹고, 날씨 좋은 날 벤치에 앉아 편의점 라면을 먹었다. 불꽃 축제할 때도 와봤고 어느 날은 혼자 가서 맥주를 마시며 드라마 주인공이 된냥 서글퍼도 해봤다. 한강에서 유명한 건 다 해본 것 같다. 하지만 ‘한강’이란 공간에 딱히 애정이 생긴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신기하게도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자주 넘기 시작하고서였다.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고 한강을 넘으면 꼭 차창 밖 한강을 바라봐야 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나는 한강을 지나면 꼭 한강을 봐야 해.”라고 하던 친구의 말을 굳이 내가 따라 하고 있었다. 습관처럼 창문으로 보던 한강은 인식하고 보는 순간부터 특별함이 되었다.
한강을 보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방금 했던 걱정도, 고민도 잊고 본다. 그러면서 진정된다. 흐르지 않는 듯 보이는 물이 내 속도를 강제로 늦춘다. 속도감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도 느릿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공간, 장소에 애정이 생긴다는 것도 무척 신기한 것 같다. 그곳에 간다거나 보는 게 치유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요즘은 매일같이 한강을 건너 출근하고 한강을 건너 퇴근하고 있다. 지치고 눈뜨고 싶지 않은 출퇴근길이지만 한강에 가까이 왔다 싶으면 굳이 잘 보이는 자리로 옮겨가 한강을 본다. 잠시 환기가 된다. 현실에서 잠깐 멀어졌다가 돌아오게 한다. 짧은 순간이라 더 놓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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