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아이돌 활동 공백기에 입덕하는 심각한 뒷북주의자다. 활동을 시작한다는 티저 기간에도, 음방이며 각종 예능을 활발히 도는 활동기에도 눈길 한 번 안 주다가 활동이 끝날 때 즈음 그들에 대한 관심이 고개를 드밀기 시작한다.
기존에 팬덤에 몸 담고 있던 주변의 친구들 마저 묻는다. 너 걔네들한테 관심 없다며? 활동이 다 끝나버린 직후 치는 뒷북만큼 미련한 것도 없다지만 그저 아이돌 사랑의 시기가 도래함은 사실 신내림 받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지 않는가. 그저 내가 좋다고 하면 좋은 것이다. 공백기든 뭐든 간에.
몇 차례의 공백기 입덕을 거치고 추측하건데, 나는 항상 가장 바쁜 시기에 무작정 발을 딛기 보다 어느 정도 활동 시기가 끝이나 가수의 이력이 정리가 된 시기에 내 입맛대로 차근차근 떡밥 먹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나 나름대로의 공백기 입덕 노하우가 생겼다고 자부하게 되었고. 사실 이렇게 거창하게 글을 쓰기는 다소 부끄러운 것이 있다.
공백기에 뒤늦게 먹는 떡밥이든, 활동기에 바삐 좇는 떡밥이든 그 떡밥의 카테고리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공백기 입덕이라고 또 그렇게까지 특별할 것이 없는 주제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어떤 공백기에 홀로 입덕한 누군가가 나 혼자 덩그러니 떡밥 먹는 그 기분에서 조금은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써본다. 나의 공백기 입덕 후기.
활동기 유독 팬과 친해지는 콘텐츠가 하나 있다. 바로 일주일을 꽉 채운 각종 방송국들의 음악방송 스케줄이다. 공중파부터 케이블까지 여러 채널들을 섭렵하다보면 한창 활동하는 시기의 음악방송을 다 챙겨보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은 후딱 가기 일쑤다.
다채로운 음방. 실시간으로 달리고 오늘 의상 오늘 안무 제스처 등등에 대해 만담을 늘어놓는 것도 재밌지만 만약 공백기에 입덕을 했다면? 이 많은 음방을 하나 하나 다 챙겨보기엔 너무 많은 물리적 시간이 든다. 그렇다면 음방 교차편집 채널은 어떨까?
'아이돌 교차편집'은 더 이상 희한하거나 지나치게 특별한 영상분야가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시도할 수 있다기엔 정말 품이 정말 많이 드는 분야 중 하나다. 필자도 몇 번 시도해보긴 했지만 일단 그 음악방송 소스영상부터 (그것도 고화질의) 하나하나 챙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생기면 그 아이돌의 음방 직캠만큼이나 교차편집 영상을 정말 많이 챙겨보게 된다. 어찌 보면 활동 전반을 아울러 어떤 분위기의 무대와 무드를 추구했는지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같은 무대를 편집하더라도 채널마다 다른 편집점과 집중하는 포인트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한 활동의 가장 대표적인 이력이기도 한 음방 무대를 가장 화려하게 즐기는 방법. 바로 교차편집 영상이다.
아이돌이 자발적으로 키는 라이브 방송, 그야말로 실시간 소통을 강조하는 소통 방송 (특히 브이라이브로 대표적인)이 바로 이 라이브 방송이다. 활발히 활동하는 활동기를 알리는 신호탄은 바로 잦아지기 시작하는 브이앱 알람들이다. 컴백 준비며 시작을 알리고 활동 중 실시간 소통에 열을 올리는 이 알람은 분명 팬에겐 기분 좋은 신호탄이긴 하…지만 동시에 사실은 뒤따라가야 할 떡밥이 가장 많은 그 활동기에 또 봐야할 것이 ‘하나 더 늘어버렸다’는 어떤 책임감 내지 숙제와 같은 기분을 안겨다 주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싫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사랑에는 원래 책임이 따르는 법 아니겠는가.)
활동기가 다 지나가버린 이후 봐야 할 라방 내지 브이앱이 밀려있다면… 내 주변은 생방파와 편집파로 나뉘는 것 같다. 브이앱으로 치자면,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라디오마냥 틀어놓는 것이다. 물론 방송 내내 집중도를 떨어트리지 않고 콘텐츠를 즐기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저 라디오처럼 말을 흘리는 둥 마는 둥 하는 방송도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나는 나대로 할 일을 하고 있고 그 옆에서 잔잔하게 들려오는 아이돌의 소통 방송은 사실 그 어떤 집중을 기해 방송에 몰입할 때만큼이나 아이돌이 내 옆에 정말 가까이 와있는 존재로 느껴지니까.
생방파가 있다면 그 반대편엔 편집파가 있으니. 요즘 유튜브 보면 혀를 내두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팬덤 내 화려한 편집 실력을 보유한 능력자들의 채널이 아닌가 싶다. 팬덤마다 존재하는 존잘님들은 역시 유튜브에도 계셨으니. 생방송 느낌으로 라이브 방송을 달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유튜브 생태계 어딘가에서는 이 라이브 방송의 하이라이트를 모아 재편집하여 내놓는 편집 귀신들이 곳곳에 있다. 이런 경우 정성이 담긴 편집과 팬만이 알 수 있는 포인트를 집어내는 것은 덤이오 그 편집 스타일들을 채널별로 짚어보며 맛보는 것도 굉장한 묘미다.
아이돌 자컨 하면 사실은 뮤직비디오 촬영 비하인드나 활동기 뒷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코로나 시국 이후 줄어든 대면 이벤트만큼이나 늘어난 것이 바로 이 영상 활동의 비중인지라. 자체적으로 제작된 아이돌 자컨은 고퀄리티의 외주형 예능이나, 리얼버라이어티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그 분야가 넓어진 듯하다.
자본을 투자해 큼직한 스케일의 고퀄리티 예능을 뽑아내는 것도 재미지만, 때때로 가수들의 취미생활이나 특기에 좀 더 중점을 맞추어 또 다른 콘텐츠를 뽑아내는 자컨방송도 요즘 내 흥미를 끄는 것 중 하나다. 요리든 작사든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내 아이돌이 꼼지락 거리며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날 하루의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그럴 때 자컨은 단순히 밀려서 꼭 봐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채널이자 프로그램으로 변모한다. 애정을 가지고 그 가수를 지켜보는 법, 요즘 시국에 발 맞추어 더 다채로워진 아이돌 자컨을 즐기는 데에도 존재한다.
자. 이 타이밍에서 다시 묻는다. 아이돌을 좋아하기에 가장 최적의 시기는 언제일까. 활동기이든 비활동기이든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최애가 빛나보이는 시기가 덕질하기에 가장 알맞은 온도라고. 이 감성 터지는 문장 하나를 쓰기까지 너무 많은 뒷북을 쳐온 내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고 오히려 누군가를 열성적으로 또 좋아하며 쌓아올린 에너지란 말이다. 라는 문장을 끝으로 덧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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