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유니는 이전 미술, 전시관 하면 어렵고 내가 접하기에는 다소 무거운 주제가 많은 분야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하이브 2층 제임스 진 전시나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관심 있게 바라보는 미술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마냥 미술과 전시가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자신의 그림 취향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최근 내가 오롯이 즐기고 싶은 리움미술관이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리움미술관은 삼성 소유의 국내 최대 사립미술관이다. 동양화, 도자기 등 다양한 국보급 고미술 작품부터 회화, 조작, 설치미술 등 쉽게 보기 어려운 국내외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특히 이번 1년 7개월 만에 이뤄진 재개장은 로비와 내부 전시 공간 곳곳을 개보수 한 것은 물론 로고까지 변화되어 다시금 시민들에게 한 발 더 가깝게 다가가겠다는 포부로 여러 가지 작품을 더욱 추가해 구미가 당겼다.
이러한 변화는 리움미술관의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이전 단순하게 LEEUM이라 적혀 있던 글씨가 아닌 중첩된 반구 형태의 로고가 그것이다. 리움 측은 ‘로고에는 시계의 회전, 지구의 공전 궤도에 착안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관문을 표현했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와 함께 도약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관문이라 표현한 입구를 통과하면 그 포부에 걸맞은 다른 차원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그중 나의 눈길을 단번에 채간 작품은 미술관의 전시장이 아닌 로비에 설치되어 있는 ‘Jennifer Steinkamp’의 ‘Blind Eye 3’였다. 해당 작품은 462인치 대형 디스플레이 미디어 월에서 디지털 렌더링 기술을 통해 구현된 꽃과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표현했다. 마치 창이 없는 그 너머의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는데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의자에 앉아 창을 바라보듯 휴식을 취했다.
이런 점이 리움미술관이 추구하고자 했던 새로운 리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작품을 즐겼고 로비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면서 미술과 함께 휴식을 취했다. 그 순간 이전 내가 앞서 말했듯 내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무거운 것이 미술과 전시라는 생각이 한 번에 무너졌다. 삶 속에서 미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전시를 본다는 행위가 마냥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이어졌다.
그러한 나의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기획 전시인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은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간단하게 리움미술관 예매 내역을 누르면 나오는 큐알코드를 찍고 입장하면 정말 인간이라는 주제 하나로 무궁무진하게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기획 전시에서는 내 의외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던 너무나도 흥미로운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극사실주의 조각가 ‘Hans Ronald Mueck’의 ‘Mask Ⅱ’이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잠든 자신의 얼굴을 확대해 정교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피부의 질감, 파랗게 보이는 혈관, 모공, 모발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일어나 Hi 하고 인사를 건넬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매우 상세하게 자신을 표현했고 얼굴이 눌려 입술이 톡 튀어나온 것까지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그런데 얼굴 뒤 쪽을 보면 뒤통수는 텅 비어 있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잠을 자는 동안 비어 버리는 생각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는 내가 생각이 너무 많고 복잡할 때 잠을 통해 생각을 비워버리는 습관에서 비롯된 해석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역시 익숙한 작품이 더 끌린다고 해야 할까. 상설전 관람을 마치고 나오고 들어간 M1 전시장에서 방탄소년단 리더인 RM이 사랑하는 작가, ‘이승조’의 ‘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작품이 전시되는지 모르고 리움박물관 예매를 했던 차라 더욱 반가웠다.
RM이 트위터에 올려준 사진으로 그리고 몇 번 자체 콘텐츠에서도 도록이나 책을 찾아보는 등으로 익숙했던 차라 더욱이 흥미가 폭발했다. 이승조 작가는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원통 형태를 다양하게 구성한 핵 연작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 세계를 추구한 화가라는 찬사를 받았는데 거대하게 한 쪽 벽면을 균일이 채우고 있는 파이프에서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완벽주의와 계획적인 성격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면 한국 근대화에 주력하던 모습이 투영되었다고 한다.
일렬로 늘어서 있는 작품이 왠지 모르게 서늘하게 느껴졌다. 너무 가지런하다 보니 위용이 넘치는 커다란 작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무서움이 들기도 했다. 작품을 보면서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드는 것이 참 생소하면서도 이런 맛에 미술을 즐기는 것이구나 하고 남준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현대 미술을 즐기다 보니 리움미술관이 가지고 있다는 여러 도자기들과 보물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보물들은 어떠한 모습일지 너무 궁금해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층인 4층에 올라가 살펴보던 중 국보 133호인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 주자'를 만날 수 있었다. 청자는 1250도가 넘는 고온에서 구워지며 푸른색의 유약을 발라 청색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인 고려 시대의 도자기이다. 거기다가 불교가 꽃을 피운 고려 시대답게 표면에는 연꽃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는데 주전자의 손잡이는 넝쿨 모양이며 개구리가 앉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까이서 보면 개구리나 연꽃의 모양을 아주 세세하게 새겨넣고 이를 완벽히 구현했다는 것이 실로 놀라웠다.
청자의 푸른색이 깨끗하고 매끈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내려오면서 조선의 백자 도자기들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 이 달항아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빛을 받아 아름답게 그려지는 빛의 파형이 둥글게 퍼지며 그 안에서 동그란 모양으로 서있는 것이 정말 호수의 달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특히 '달항아리'는 동그란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반구 형태로 각각 아래위를 제작하고 이를 이어 붙여 동그랗게 빚어낸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완벽히 동그랗지 않으면 깨트리기 때문에 구워져 나오는 그 순간에까지 공을 들였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던 순간이었다.
이런 도자기 외에도 고미술관에는 여러 그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말로 글로 배웠던 신사임당이나 김홍도와 같은 작가들의 화풍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너무나도 재밌던 작품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김홍도'의 '군선도'였다. 수묵 담채 작품으로 신선들이 어딘가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려낸 작품인데 각 신선들은 모두 한 곳을 응시하고 있으며 여러 얼굴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종이 바탕에 먹으로 마치 색이 살아있는 듯 화려하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놀라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층에서부터 1층까지 시간순으로 내려오는 내내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보물과 국보의 향연이었다. 시대에 따라서 미술이 달라지며 그 시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선형의 계단으로 설계한 것도 그런 의미가 있을까?
사실 나선형 계단은 ‘김수자’ 작가의 설치 미술인 ‘호흡’으로 창에 부착되어 있는 특수필름으로 날씨에 따라서 빛이 다르게 보이는 아름다운 예술이다.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이 하얗고 오색찬란한 곳을 바라볼 수 있어서 미술과 함께 호흡한다는 기분이 들어 차분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처럼 새로 문을 연 리움미술관은 새로운 작품들과 함께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한결 가깝게 다가가는 준비를 마쳤다. 돌아보니 정말 곳곳의 미술품들이 나와 함께 하며 전시를 보는 내내 생각과 궁금증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아니 여러 번 방문해서 미술품들을 다시 보고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시공간 그리고 생각을 열게 만들어 준 미술품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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