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더위에 지쳐 입맛도 없는 요즘 흰지는 눈에 무언가를 담기에도 벅찬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보통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 따위를 보고 이곳에 리뷰를 적는 게 낙이었건만,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액정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기에 눈이 금방 피로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전보다 자주 종이에 프린트된 활자를 보고 있고 책장을 넘기는 편이다. 그야말로 여름 피서로 독서를 선택한 셈이다. 그래서 요즘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들으면 그렇게 답한다. 화면 들여다보고 있기가 너무 피로해서 요즘은 종이책을 자주 읽는 것 같다고.
취미가 뭐냐는 질문들에 대답하다 보니 생각보다 정말 ‘취미’란 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도 들더랬다. 취업 전 무수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취미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 전공과 직군을 직결하는 훈련에만 길들여졌던 탓일까, 어느 순간 취미는 퇴근하고 집에 가면 누워만 있기에도 피곤한 나에게 거창하고도 뭔가 있어보여야 하는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는데. 입사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지금 회사에 갓 들어온 신입에게 나 또한 “누구씨는 집에 가면 뭐해요?”를 물어보고 있었다.
취미를 거창한 영역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요소에는 사실 요즘 SNS 광고로도 꼭 뜨곤 하는 원데이/온라인 취미 클래스도 한 몫했다. 그네들이 문제란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무언가 시간과 짬을 내어 듣는 수업에선 좋은 성과만 내야 한다는 나의 강박에 가깝겠다. 그래도 시간을 들였는데, 뭐라도 성과를 내야 하지 않겠어? 어여쁜 성과물을 보여주는 인스타그램 1:1 화면비율의 취미 클래스 광고영상을 볼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질문에 나는 취미 클래스를 뭘 들을지 재고 따지다가 6개월을 통째로 보내버렸다.
그런 내가 이번 여름 쭉 읽기 시작한 책 시리즈는 나의 강박을 조금 해소해준 것 같다. 각기의 취미 이야기를 담은 <아무튼> 시리즈이다. 2018년 5월 출간된 <아무튼 피트니스> 시작으로, 이미 44권의 책을 낸 이 꾸준함은 손 뻗어 닿기 쉬운 곳의 영화, 예능와 같은 매체부터 시작해 운동, 쇼핑, 공간, 인물 등으로 자유로이 뻗어나간다. 폭 넓은 대화 주제 덕분일까, 내가 이미 관심있어 하는 분야는 물론이오 앞으로 관심있을 예정인 분야까지 손 댈 수 있다는 건 이 시리즈의 특징인 꾸준함에서 비롯한 특장점일 것이다.
내가 최근 재밌게 읽었던 편은 복길의 <아무튼, 예능>과 정유민의 <아무튼, 트위터>, 임이랑 <아무튼, 식물>이다. 예능 PD로서, 그리고 오랜 예능 시청자로서의 복길의 시선, 그리고 트위터 초창기부터 지금까지의 SNS 문화를 돌파하는 정유민의 시선,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 써있듯 ;사람보다 식물을 더 좋아한다’는 임이랑의 시선까지. 그네들의 취미, 그러니까 아무튼 생활 속에 녹아들어가 시간에 진득하게 붙어있는 그 취미들은 이미 작가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대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정말 많은데 실제로 누가 만나게 해준다고 하면 나는 꼭 코미디언 이승윤을 말할 거다.
나는 정말 지치고 힘들 때 <나는 자연인이다> 를 보는데, 자연인 출연자들의 기행보단
그들을 바라보는 이승윤의 초월한 표정에서 더 많은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시간이 쌓이면 그래서 짬밥이라는 게 쌓이면 ‘툭 치면 툭 나온다’라는 말이 예사말이 아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가 쌓여 그것이 감이 된 사람만큼 무시무시한 인종은 없기에. <아무튼> 시리즈를 집필하기까지의 각 분야 사람들이 써내려간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렴풋한 내 기억 속에 있던 인물이나 공간을, 당신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선두에 끌어올려 다시 재조명하고 다시 새 사람 새 인물이 된 것마냥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소통하고 싶지만 소통하고 싶지 않은 마음. 혼잣말이지만 혼잣말은 아니면서 혼잣말인 말. 무언가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만 그 말에 꼭 반응을 기다리지는 않는 상태. 그런 나의 애매한 상태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 나는 자주 트위터로 도망쳤다.”
나는 자꾸 식물의 세계로 도망친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변해가도 나에게는 흙과 식물이 있다. 식물이 주는 에너지가 아직까지 나에게 영험함을 발휘하고 있다.
내가 모두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이 계속 나를 도와줄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에서 연속으로 ‘도망친다’라는 표현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을까. 그들이 쌓아올린 취미의 시간은 그네들의 안식처가 되어준다는 그 당연한 말을 나는 시리즈에서 발견한 ‘도망친다’라는 표현으로 다시금 확인한 것만 같다.
그래, 취미란 범상치 않은 한 업적이 아니라 범인들의 창구이자 평범한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안식처 같은 곳이구나. 이 더운 한여름에 눈을 둘 데가 없어 <아무튼> 시리즈를 들쳐보다 불현듯 깨달았다. 일상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취미를 헛된 시간으로 치부하지 말고 애써 떼내려들지도 말자고. 그저 받아들이며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자고. 무더위를 먹었는지 교훈을 깨달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문화에 대한 이번 달 글쓰기는 이렇게 두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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