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지는 음악방송보는 걸 좋아한다. 아이돌을 좋아하고 아이돌들의 노래를 좋아한다면 응당 매주 챙겨보는 음방 하나씩은 있기 마련. 한창 무대 보는 취미에 꽂혔을 때만 해도 매주 목요일 엠카 시간대엔 지인과의 연락이나 약속은 만사 제쳐둔 것 같다. 유행을 따라 매번 빠르게 흘러가는 아이돌의 타이틀곡이며, 남들은 너무 많아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다는 그룹들의 멤버 한 명 한 명까지. 나한테는 복잡다난하기보다 반짝이고 재밌는 향연들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아, 사실 이 모든 문장은 내가 그냥 '케이팝 오타쿠'라는 사실을 길게 늘어트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토록 화려한 케이팝의 세계는 콘텐츠로도 항상 좋은 소잿거리였다. 최근 성공리에 공연을 마친 '스브스 채널'의 <컴눈명>이나 <숨듣명>부터 유튜브 채널에 즐비한 케이팝 아이돌들의 예능클립까지. 노래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무대연출, 팬들과의 소통, 이미지 메이킹 등 아이돌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는 그들을 조명하는 매체가 발전하고 시장을 넓혀감에 따라 갈수록 복잡다난해지고 있는 추세다.
그 때문일까? 이런 아이돌 세계를 다룬 드라마 또한 여러모로 많은 변화를 거쳐가는 듯하다. 오늘은 2011년에 방영한 드라마 <드림하이>와 2021년, 10년의 간극 이후 방영 중인 드라마 <이미테이션> 이 두 편을 살펴보고자 한다. (두 드라마 모두 KBS의 작품인 것도 우연인 걸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10년 새 드라마가 묘사하고 있는 아이돌 세계 또한 그럴 것이다. 결국은 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 안에서 분명 또 다른 산업군인 케이팝의 세계관은 어떻게 발전하고, 진보했을까.
<드림하이>의 겉모습은 그래서 사실 <학교> 시리즈를 연상하게 하는 학원물에 가깝기도 하다.
<드림하이>에선 아티스트 배출을 목표로하는 예술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주축으로 등장한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 신분으로서 등장하여 주로 교복을 입고 있고, 학교 안팎의 생활을 병행하는 모습이 주로 보인다. 예고인 만큼 학생들의 트레이닝 또한 학교 안 선생님이 지도하며, 학교 바깥의 기획사 혹은 대중들의 시선은 아직 학교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낯선 혹은 두려운 존재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드림하이>의 주인공들은 울타리 안에 있는 셈이다.
그에 비해 <이미테이션> 속 연습생들(혹은 데뷔한 가수들)은 어떤가.
앳된 얼굴임에도 교복을 입고 그 나이 또래의 학생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무를 지니기보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소속사에 소속된 연습생 혹은 아티스트로 등장한다. <드림하이>의 주인공들이 어느 정도 둘러쳐진 학생 혹은 학교라는 울타리에 보호되는 느낌이라면 <이미테이션>의 주인공들은 이미 사회와 대중들에게 내던져지고 있는 혹은 그런 상태에 가깝다.
전설의 <드림하이> 플래쉬몹 장면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 <드림하이>의 마지막 방송에서 학생들이 선생과 함께 광장 한복판에서 플래쉬몹을 선보이는 장면은 당시 그리 대중화되지 않았던 행위 예술로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안겨다주었다.
학교 안에서만 갇혀 있던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 끼를 발산하는 모습은 위와 같은 플래쉬몹 장면으로 혹은 버스킹 장면으로 표출된다. 정식 혹은 상업성 짙은 무대가 아닌 그야말로 아마추어의 형태인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들이 무대에 서는 장면들이 나오긴 하지만 이 자체는 학생들이 서는 무대의 한 과정이기보다 드라마 후반부 교복의 태를 벗어난 학생들이 이루어낸 결과물에 가깝다.
그에 비해 <이미테이션>에서의 무대연출은 드라마 세트만이 아닌 드라마와 현실을 오고 간다. 드라마 속 아이돌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제 방송 프로그램인 KBS의 <뮤직뱅크>에 출연하기도 하며 실제 방송분과 똑같은 직캠 영상이 뜨기도 한다. 드라마 시작 전부턴 트위터의 공식 계정을 개설하여 현역으로 활동하는 아이돌과 똑같은 홍보용 트윗을 보내기도 해서 화제를 끌기도 했다.
<드림하이> 이후 10년, 다방면으로 넓어진 SNS와 매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이 <이미테이션>의 세계관은 나름의 넓어진 케이팝 장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물론 이 모두가 프로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다.
드라마야 본디 사람 사는 이야기일진데, <드림하이> 속 인물들과 <이미테이션>의 인물들의 묘사와 설전 또한 큰 차이가 있을까?
한국 드라마에 빠지면 섭한 사랑이야기는 <드림하이>와 <이미테이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좀 더 학원물의 설정을 빌린 <드림하이>가 혜미(배수지 역)와 삼동(김수현 역)이 거쳐온 학생/청소년기의 첫사랑과 짝사랑, 삼각관계 등 좀 더 감정선에 힘을 싣는다면 <이미테이션>은 스캔들, 소속사 분쟁, 멤버들과의 갈등 등 이미 데뷔한 아이돌이 겪을 수 있는 대외적인 사건과 맞물린다.
8화에서 연애를 시작한 마하(정지소 역)와 권력 (이준영 역)이 비밀데이트를 하다, 파파라치에 찍혀 스캔들 위기에 휘말리는 장면처럼, 아이돌이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직업인 만큼 감정을 앞세웠을 때 따르는 직업적인 고충이 드라마의 주요 사건들을 장식한다.
학생 때와는 다른, 어찌 보면 똑같은 혹은 비슷한 나잇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기가 힘든 현 세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리뷰를 쓰기 위해 드라마들을 들춰보는 동안 내 눈길을 끈 대목이 있었다. 드라마 <이미테이션> 기획의도에 써있는 바로 "아이돌 100만 연예고시 시대"라는 문장이었다. 시장은 커졌고 매체는 많아졌다는 어찌보면 뻔한 문장 뒤에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둘러싼 세계는 점점 복잡다난해지고 있다. 그건 사실 특히나 사람의 감정으로 돌아가는 산업군에 붙은 "고시"라는 단어가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업군을 가리키는 키워드가 10년 전 가수라는 꿈을 향해 자유로웠던 "학생들"에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살아남아야 하는 "고시"로 바뀌었다는 게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이게 오늘 하루 이틀의, 이 산업군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기에 더 그런 감정이 드나보다. 무대는 더 크고 화려해진만큼 사람을 돌아볼 때는 아닌지, 10년 새에 바뀐 강산이 우리에게 다시 질문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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