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히죽이다.
코로나 때문에 온 세상이 멈춘줄 알았는데. 그새 꽃이 피고, 날이 따수워졌다. 작년 이맘때는 꽃놀이며, 나들이를 간다고 한창 분주했었지.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느냐 옴짝달싹 못했다. 덕분에 봄볕, 봄바람, 봄내음, 이 좋은 것들을 오로지 집에서 감상만 하고 있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생각보다 사회와 거리를 두는 시간은 길어졌다. 그만큼 집에 더 오래 머물러야만 했다. 자연히 ‘봄’보다는 TV와 더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간 시간이 없어서 놓쳤던 드라마며, 영화, 예능 프로그램을 지겨울만큼 마음껏 봤다.
최근에는 MBC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배우 경수진이 직접 막걸리를 빚는 에피소드였다. 경수진은 여러차례 찹쌀을 씻고, 고두밥을 짓고, 직접 떠온 약수까지 부어가며 꽤나 정성을 들여 막걸리를 만들었다. 분명 과정 하나하나가 힘들어보였다. 보는 사람이 다 한숨이 나올 정도인데, 이상하게 당사자 경수진은 참 행복해보였다.
방송 때문인건지, 아니면 봄을 타는건지. 괜히 옛날 생각이 났다. “전통주 취재 다닐 때, 술 참 많이 만들었지” 라는. 그렇게 느닷없이 감상에 젖어서는 막걸리를 빚겠다고 마음까지 먹었다. 이미 카톡으로 “나 막걸리 만들거야” 동네방네 떠들기도 했다.(이럴 때 보면 참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다.)
마음을 다잡고 앉았다. 막상 막걸리를 빚으려고 네이버에 ‘막걸리 빚는 법’을 검색해보니 ‘하’. 한숨부터 나왔다. 도대체 이걸 언제 다 하나 싶더라. 결국, 고민 끝에 간편하게 수제 막걸리를 만들 수 있는 ‘막걸리 키트’를 사기로 했다. 정석대로 만들다가는 힐링하려다 괜히 병이 날 것만 같았다.
온라인에는 꽤 많은 제품이 있었다. 보통 막걸리는 며칠씩 발효를 해야하는데, 하루만에 막걸리를 완성할 수 있는 제품도 많았다. 이것저것 찾다가 최종적으로 ‘배상면주가 내가 만드는 느린마을 막걸리 DIY 키트’를 구매했다. 가격은 2개에 13000원이다.
패키지 한 개당 1리터의 막걸리를 만들 수 있다. 패키지가 꽤 예뻐서 한 개만 만들고, 나머지 하나는 지인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내용 구성품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간단하다. 쌀가루가 들어있는 1리터 짜리 페트병, 각각 별도 포장된 누룩과 효모, 라벨스티커와 테이스팅노트, 간단한 설명서가 있다. 조금 놀랐던 건 혹시나 병뚜껑을 잃어버릴 것을 대비한건지 여분으로 하나 더 준다는 점이다. 은근 디테일이 있다.
구성품도 다 살펴봤으니. 이제 진짜 만드는 일만 남았다. 막걸리 키트를 이용하면 매우 쉽게 수제 막걸리를 만들 수 있다. 그저 모든 재료를 용기에 담은 후, 물을 붓고 잘 섞어주면 끝이다. 막걸리는 만들고 싶은데, 성질은 급한 나같은 사람에게 딱 알맞는 제품이다.
이후부터는 관심과 사랑만이 남았다. 물을 부어둔 막걸리는 상온에 두고, 5일동안 매일 하루 2번 잘 저어줘야 한다. 예전에 어디선가 주워 들은 적 있는데. 술은 관심과 사랑을 가득 받아가며 익어야 더 향긋하고 깊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틈만 나면 들여다 보고,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큰변화를 느끼지 못했는데, 하루하루 지날 수록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점점 향이 더 그윽해지고,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술을 ‘수불’이라고 불렀다. 이는 술이 발효하는 과정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데, 이 모습이 마치 술 안에 불이 있어 끓는 것 같다는 의미에서 나왔다고 한다. 정말이지 절묘한 이름이다.
4일차쯤 되면 저어주기 위해 병뚜껑을 열때마다 조마조마하다. 터질까봐 병뚜껑을 꽉 닫아두지 않았음에도 병 속 가득한 탄산이 올라와 넘칠 것 같기 때문이다. 이후 5일 차가 되면 진짜 막걸리 냄새가 난다. 이제 병을 열고 체에 막걸리를 걸러주면 된다. 나는 큰 체에 한번, 작은 체로 한번, 총 2번 걸러줬다. 찌꺼기를 다 거른 후 바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막걸리 도수를 낮추기 위해 물을 섞어야 한다. 설명서에는 물 1리터를 섞으라고 적혀있다. 이건 기호에 따라 맛을 봐가며 물을 첨가하면 된다.
나는 레시피에 따라 물은 1리터를 섞었다. 맛을 보니 조금 밍밍하게 느껴지는데. 개인적으로는 0.8리터가 적당한 것 같다. 잘 섞은 막걸리는 발효를 했던 통에 담으면 된다. 병 안에 찌꺼기를 말끔하게 닦아낸 다음, 막걸리를 붓고 라벨까지 붙여주면 진짜 완성이다.
정석대로 막걸리를 만든 건 아니지만 꽤 뿌듯하다. 발효과정도 모두 지켜봤고, 기다리는 내내 설레기도 했다. 완성한 막걸리는 반드시 냉장고에 보관하고, 이왕이면 일주일 이내로 마시는 게 좋다.
사실...일주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나? 곧장 김치전을 부쳐다가 막걸리 한잔 마셔야지.
자, 그럼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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