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로 힘들어도 되는거야?'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예컨대 몇날 며칠을 작업했던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1년간 준비했던 시험에 낙방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게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은 말도 안되는 상황말이다.
아이러니한 건 죽을만큼 힘들었는데, 죽지않고 또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또 어느새 낄낄 거리며 웃기 바쁘다. 결국, 반복이다. 문제가 생기고, 해결하고, 다른 문제가 생겨나면 또 다시 꾸역꾸역 이겨낸다. 참 지긋지긋하다.
인생에 좌절이 들이 닥칠 때면 지구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모두가 죽거나 사라지는 거라면 억울하지도, 미련이 남지도 않을테니. 하지만 현실은 결코 망할리 없다.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내가 지구 멸망기,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환장하는 것도 다 빌어먹을 현실때문이다. 망해버린 세상을 보면 대리만족을 느끼다가도, 살아남은 자들의 우여곡절은 내 모습같아 짠하다.
모든 게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못된 심보가 올라올 때면 세상이 망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봤다. 그중 최근 재밌게 본 넷플릭스 드라마 3편을 소개하겠다.
원헌드레드
원헌드레드는 미국 CWTV에서 방영했던 드라마다. 현재 총 시즌 6까지 나왔고, 내년에 마지막 시리즈인 시즌7이 방영될 예정이다. 넷플릭스에서는 현재 시즌4까지 볼 수 있다.
최근 원헌드레드에 흠뻑 빠져있었다. 원헌드레드는 매 시즌마다 지구가 망할 수 있는 갖가지 이유를 보여준다. 작가가 어떻게 하면 더욱 다이나믹하게 아포칼립스를 이룩할 수 있는지만 고민하는 것 같다. 그만큼 매 시즌이 사람 애간장을 녹인다.
원헌드레드의 배경은 핵전쟁 후 97년 뒤 미래를 그리고 있다. 핵전쟁 당시, 소수의 인류는 우주 정거장으로 피해 목숨을 건진다. 이들은 그곳에서 수 년을 보내며 지구의 방사능 수치가 낮아지기만을 기다린다. 어느 날 산소발생기의 고장으로 더이상 우주정거장에서의 삶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정부는 지구에서의 생존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감옥에 있던 아이들 100명을 선발, 지구로 내려보낸다. 아이들이 도착한 지구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생존이 가능한 환경이었다. 이후 겪게되는 지구 적응기, 생존기가 바로 원헌드레드의 주요 내용이다.
원헌드레드에는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저마다 매력적이다. 이들은 매 시즌 상황에 맞춰 입체적으로 변화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도덕과 생존 사이에서 겪는 인간의 고뇌를 잘 표현한다.
넷플릭스에서 뭘 봐야할 지 고민이라면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한다. 시즌도 4개나 공개됐으니 한동안 뭘 봐야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빨리 시즌 5도 공개 됐으면 좋겠다.
데이 브레이크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좀비를 빼놓을 수 없지. 데이 브레이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일종의 좀비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시즌1만 공개됐다. 마지막이 다음 시즌을 암시하듯 끝났는데, 언제 시즌2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
데이 브레이크는 여러 장르를 복합적으로 섞어 놓은 느낌이다. 핵폭탄이 터진 후, 세상은 폐허가 된다. 어른들은 사람을 잡아 먹는 좀비, 일명 '굴리'로 변한다. 따라서 아이들만이 인간의 면모를 갖춘채 세상을 살아간다. 주요 내용은 주인공 조쉬가 자신의 여자친구 샘을 찾아다니는 여정이다.
워킹데드처럼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고, 코믹한 하이틴물이다. 게임물 분위기도 나고, 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같은게 장면 곳곳에 들어있다. 전개 중간중간 위트를 가미해 B급 정서를 드러내는데, 딱히 임팩트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음, 조금 재밌다' 정도.
대신 속도감 있는 전개방식, 미성숙한 아이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펼쳐지는 황당하지만 현실적인 생존기라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여기에 '청불'이기 때문에 조금 잔인하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든다.
데이브레이크는 각잡고 정주행을 하는 것보다 생각날 때마다 한편씩 보는 것을 추천한다. 킬링타임으로 꽤나 괜찮은 작품이다.
엄브렐러 아카데미
유튜브에서 소개 영상을 보고 정주행 했던 작품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넷플릭스가 만든 히어로 드라마다. 현재는 시즌1 총 10편까지 나왔으며, 시즌2 제작이 확정된 상황이다.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초능력자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조합으로, 개인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설정에 도무지 안볼 수가 없었다.
이야기는 1989년 시작된다. 어느 날 세계 각지에서 임신을 하지 않은 여성 43명이 한날, 한시, 동시에 아기를 출산한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하그리브스는 이들 중 7명을 입양해 자신의 자식처럼 키운다. 이들 7명 중 6명에게는 각기 다른 초능력이 있었고, 하그리브스는 아이들을 훈련시켜 '엄브렐러 아카데미'라는 명칭의 히어로로 만든다. 이들은 이름 대신 1~7 숫자로 불렸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성인이 됐다. 이들은 더이상 세상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각자 흩어져 저마다의 인생을 산다. 그러던 중 이들을 키웠던 하그리브스가 사망한다. 이 소식을 들은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장례를 치루기 위해 다시 모이게 된다. 그리고 때마침 수년 전 사라졌던 시간여행 초능력자 넘버5가 나타난다. 그리고 넘버5는 "8일 뒤 세상이 망하며, 이를 구해야한다"고 말한다. 결국,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8일 뒤 일어날 종말을 막기위해 나선다.
저마다 캐릭터가 가진 특성도 좋았고, 이를 연기한 배우들도 캐릭터와 제법 잘 어울린다. 나름 반전도 있고,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7명의 캐릭터를 모두 설명하고, 내용까지 전개해 나가기엔 10화는 너무 분량이 적었나보다. 확실히 각 캐릭터를 소개하는데 급급한 느낌이다. 차라리 시즌을 조금 더 길게 편성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기승전결 중 '기'만 본 느낌. 흐름상 아직은 이렇다 할만한 뭔가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행인건 아주 복잡한 설정임에도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또, 매력적인 빌런들 덕분에 그럭저럭 재밌게 봤다. 뭐랄까.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품이라고 해야하나.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음 시즌을 봐야 알 것 같다. 아무튼 시즌1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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