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V.13
일정 2022. 7. 7 ~ 2022. 7. 10
장소 COEX D HALL
* 당일 재입장 가능
주최 오씨메이커스
협찬 Klip Drops
공식후원 서울특별시
나는 어릴 적 캐릭터를 참 좋아했다. 일본으로부터 물 건너온 투니버스의 애니메이션, 스크롤을 막 내리는 것만으로도 센세이션이 되었던 초창기 웹툰 이전에 내가 사랑한 만화 ‘마린블루스’의 캐릭터 ‘성게군’이 있었으니.
지금은 마린블루스 웹툰을 볼 수 있는 홈페이지가 닫혀버려 단행본으로만 접할 수 있지만, (근황을 살펴보니, 최근 6월 마린블루스 nft가 출시되었다는 후문이다.) 당시 마블 덕후였던 나는 단행본의 만화, 홈페이지의 소소한 일상툰을 읽고 또 읽으며 캐릭터작가의 꿈을 품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그림을 사랑하는지, 부푼 꿈을 안고 작가님에게 팬메일을 보내기도 했던 초등학생은 무럭무럭 자라 내 돈 주고 굿즈들을 차고 넘치게 살 수 있는 직장인이 되었더란다.
직접 만들 수는 없어도 돈을 쓸 수는 있으니. 그런 내 앞에 다가 온 것은 2022년 코로나 거리두기 해제 이후 열리는 서울 일러스트페어 얼리버드 티켓팅이었다.
7월에나 시작하는 페어를 정말 갈 수 있으리라고는, 네이버 예약을 거는 6월 시점에선 막연하고도 갸우뚱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푹푹찌는 7월이 되었다.
서울민으로서 코엑스를 안 가본 건 아니었지만, 늘 사람이 많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가지않는강남 한복판의 코엑스는 활동반경에 자주 들어오는 장소는 절대 아니었다. 서일페는 코엑스의 4층 디홀에서 열렸고 나는 장소부터 생경한 코엑스에 들어서자 그보다 더 생경한 각종박람회들과 마주해야만 했다. 넓디 넓은 코엑스에서는 비단 서일페뿐만 아니라 유아도서 박람회, 급식 박람회 등 각종 사람 많은 행사장의 메카였다. 토요일 11시. 나와 내 친구가 도착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최대 7만명을 포용할 수 있다는 장소 앞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체감상 홀 안에 7만, 홀 바깥에 7만 도합 14만의 일러스트 대군이 모인 이 기분은 정말 기분탓일까? 네이버 예약 등으로 인터넷 사전예매 혹은 현장예매를 한 사람들 모두 공평하게 40분-50분에 가까운 줄을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죽치고 서있다 힘을 빼거나 하지 않았고 조금씩이나마 옆사람과 들뜬 대화를 나누며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게 희망 정도였달까. 럭페나 공연장을 제외하고, 다른 목적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고 스친 적이 또 있었던가? 물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건 기본이다.
그렇게 1시간에 가까운 줄을 기다렸다 드디어 들어선 디홀에서 나와 내 친구가 나눈 첫 대화는 이것이었다. “야 미친 에어컨 개시원해!”
첫번째, 부스는 넓고 금손은 많더라
사실 서일페 장소에 들어서기 전까진 딱히 어느 특정 부스를 먼저 봐야겠단 생각을 하진 못했다. 하지만 40분 50분을 헛되이 기다리지 않았다면 분명 사람들이 유독 자주 들고 다니는 캐릭터의 굿즈 봉투, 풍선 등. 대중픽 캐릭터부터 이름을 인스타그램에 검색하면 분명 닉네임에 서일페/OO부스 정보부터 뜰 것이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부스라고 백퍼센트 나의 취향이리란 보장도 없다만 나처럼 아무런 정보도 없이 발부터 먼저 들였다면 나름 추천하는 방법이다.
(참고로 필자는 A열부터 순서대로 돌기를 자처하다 B에서 정신을 놓아버렸다. 인기있는 부스부터 먼저 들렀다 그 열에 있는 다른 부스들을 쭉 돌아보는 것이 덜 지루한 방법 같기도. 이렇게 얘기하지만 결국 하루를 통째로 써서 코엑스에 열린 모든 부스를 다 돌아보았다는 후문이다.)
아마 서일페에서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은 “팔로우 했어요~” 였을 것이다.
작가 부스마다 꼭 달려있는 멘트는 해당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 하면 스티커/엽서 등을 증정한다는 각종 문구들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 혹은 그 작가의 화풍 및 캐릭터들을 집약하기에 인스타그램은 단연 최적의 공간이다. 아이디를 치고 들어가 처음 보이는 프로필 사진과 최근 올린 피드 9장으로 구성된 개성들을 하나 하나 따라가다 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 바로 이 서일페다.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서 받은 엽서와 스티커만 못해도 50장 60장을 훌쩍 넘겼다. 후한 인심이 아닐 수 없다.
유독 나의 시선을 끌었던 서일페의 트렌드 중 하나는 바로 한국 고유의 미를 담은 캐릭터나 일러스트, 혹은 그 재해석이 많았다는 것이다. 국악풍이 점령했던 K-pop시장과 마찬가지로 일러스트 업계 또한 예외는 아니었나. 한복부터 시작해 한국풍의 민화, 전통건물, 한국의 요괴 등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그림과 재해석을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원픽이라기엔 픽이 좀 많다. 내가 사랑이 많은 탓이기도 하지만 만만찮게 넓고 광활했던 서일페의 책임소지도 분명 있었으리라. 인스타그램을 팔로우 하고 나서도 두고두고 들여다보게 되는 캐릭터/일러스트 몇을 소개한다.
(혹시나 인스타그램 계정 소개 차 캡쳐한 이미지에 문제가 있을까 싶어 작가님들의 얼굴은 노출되지 않게끔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몽이 (Instagram : @mong._.bff)
서일페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부스를 꼽으라면 나에겐, 당연 몽진 부스의 캐릭터 '몽'이었다. 엽서며 포스터, 티셔츠까지 곳곳에 광기어린 눈을 반짝이는 새앙토끼 몽이를 보고 있다 보면 나에게도 왠지 모를 초인적인 불끈 솟아오를 것만도 같더라니. 몽이 엽서 하나를 사서 작업실 컴퓨터 옆에 붙여둔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강렬한 색감, 매끈한 테두리가 인상적인 몽이는 현재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도 접해볼 수 있다.
수이앤 (Instagram : @su_iaen)
서일페를 장악했던 건 사실 사람도, 힙도 아닌 바로 '고양이'었다. 어쩌면 여기가 '궁디팡팡 페스타'일수도 있겠단 착각이 들 정도로 여기도 고양이. 저기도 고양이. (물론 사실 나 또한 개보다는 고양이 파다.) 그 오와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이 바로 수이앤 작가님의 '삽살개' 캐릭터였다. 엽서와 노트북 파우치 등으로 볼 수 있는 개성 강한 삽살개들. 삽살개는 영물이라 귀신을 쫓을 수 있었다던가? 감자튀김 삽살개와 함께라면 마감도 두렵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파우치를 샀다. 파우치는 내가 서일페에서 사온 굿즈 중 가장 아끼는 물건이 되었다.
체리블로섬 (Instagram : @madblossom1)
귀여운 것만큼 개인의 취향을 가리는 분야가 또 있을까 싶지만, 체리블로섬 부스는 정말 귀여워!!!!!!!!!!!!!!!!!!!!!!!의 연속이었다. 다이어리 꾸미기에 취미가 없는 나조차도 마테를 하나 조상해야할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할 정도로 귀여운 그림으로 빈틈없이 꽉 차있는 체리블로섬의 그림은 종합특별선물세트와도 같다. 마테 뿐만 아니라 그립톡, 키링, 파우치, 보틀 등 여러가지 일러스트 굿즈 또한 접할 수 있었다.
잔보 (Instagram : @ninano_boram)
따뜻한 색감과 편안한 화풍으로 첫눈에 사로잡혔다. 작가님의 그림에서 가장 좋은 것을 꼽으라면 바로 인물의 표정들. A3 사이즈의 제법 큰 그림이지만, 어떻게든 방 안에 걸어놔야 생각하게 만들었던 이유들은 충분했다. 고르고 고른 그림은 아주 큰 개를 기르는 주인과, 그 주인이 또 저를 그리는 것을 빤히 알고 있는 큰 개의 투 샷이었다. 따뜻하고 정감가는 그림이 자꾸만 시선을 머물게 한다.
드리미드림 (Instagram : @_dreamy.dream)
인스타그램에 괜찮은 일러스트들을 팔로우 하다보면, 알고리즘의 효과로 비슷한 화풍의 그림들을 접하게 된다. 득이지만 독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오던 내게 드리미드림과도 같은 그림 스타일들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순정만화라기 보다, 판타지 SF라기보다 그것들을 한 데 섞은 그림체는 그 옛날 우리 마음 속의 소년소녀들을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옥상의 날 (Instagram : theroofday)
그림활동 뿐만 아니라 직접 집필하신 독립출간물도 있어 뭔가 더 관심과 마음이 가던 부스였다! 옥상이라는 주제, 주제를 관통하는 남색과 초록색의 조합이 금방이라도 우리를 여름의 한 가운데로 데려다준다. 벅차오름부터 고요함까지 옥상의 날 그림들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참 넓디 넓다는 인상이었다.
코티디앙 by 서현 (Instagram : @cotidien_)
작가님 말에 따르면, 직접 여행 다닌 장소를 그림으로 남긴다 하셨는데 어쩜 이리도 꽉차고 예쁜 그림을 그리시는지. 대체 뭘로 그렸을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필선과 채도가 여행 그림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받은 스티커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나도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부러움은 덤이다.
여기까지 긴 글을 읽느라 수고 많으셨다는 말부터 건네고 싶다. 최근 오즈앤엔즈에서 작성한 글 중 아마 가장 긴 글이 아닐까 싶다. 들뜬 후기란 것이 원래 그렇다. 사진도 한가득, 말하고 싶은 것도 한가득이다보니 자칫 정리가 되지 않으면 드넓은 페스티벌마냥 정신없이 보고 듣고 흘러가는 것일지 모르니. 딱 그만큼의 부풀은 에너지를 서일페에서 받고 온 것 같다.
서일페를 다녀오고 가장 좋았던 건 역시나 나도 뭔가를 열정적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창작욕구인 것 같다. 자기가 그리고 만든 것들을 내놓는 용기와, 작가님 그림 잘 보았다는 연신 반가운 인사들은 보고 스치기만 해도 나또한 입가에 미소를 씨익 짓게 만드는 동력 중 하나였다. 무언가를 만드는 마음과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니. 이 무슨 일드에서나 나오는 교훈인가 싶겠지만. 나는 그래서 "겨울에 또 만나요!"라 적혀져있던 출구 멘트가 좋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울에도, 나는 7만 대군을 뚫고 서일페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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