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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은 짧게, 여운은 길게 (<드라마 스테이지 2021> 리뷰)

CULTURE

by 오즈앤엔즈(odd_and_ends) 2021. 4. 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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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드라마의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 (사진=tvN)


희노애락. 다사다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 내가 사람에 얽힌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요즘 눈이 참 즐겁다. 바로 tvN <드라마 스테이지 2021>의 막이 올랐기 때문이다. CJ ENM 신인 스토리텔러 지원사업 'OPEN(오펜)'의 당선작 10편으로 이루어진 단편극은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한때  KBS의 단막극을 좋아해왔던 나에겐 그때의 기억도 새록하고 기존의 상업영화판에서 보기 힘든 풍자와 도발적인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어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총 10부작,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4월 3일 토요일을 기준으로 벌써 7회째 가열찬 시리즈를 달리고 있는 우리의 <드라마 스테이지>. 이제까지 방영된 작품들의 리뷰를 만나보자. 

▲ (사진=tvN)


<민트 스테이지>

연출  정형건 / 극본  방소민 / 출연 임채무 안우연


"나 때는 말이야" 60대 할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청년이 되었다. 그것도 몸만. 주름이 즐비한 얼굴로 "노인공경"을 주장하며 "요즘 젊은 것들은 이래서 안 된다"고 말하는 노인이 정말 20대로 돌아간다면?


불의의 MRI 의료 사고로 하루 아침에 젊은 청년이 된 '현철'은 이제까지 이뤄온 삶을 뒤로 한 채 홀홀단신 청년으로 길바닥에 내쳐지게 된다. 그렇다고 황혼이혼을 당하고 자식들과 연락 두절이었던 지난 과거가 영광스러웠다면 그것도 아니다. 길바닥에서 스트릿 공연을 하는 음악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청년 현철은 정말 삶을 처음부터 다시 살게 된다. 고개를 숙일 줄 몰랐던 현철이 민증 상으로 저보다 나이가 많은 92년생에게 형이라 부르고, 괴롭힘 당하는 친구를 위기 상황에서 구해주기도 하며 대안가족과도 같은 친구들의 틈에서 점차 어울리게 된다.


모든 타임슬립 스토리가 그러했듯, 현철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사실 드라마는 그가 정말 돌아가는지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는 듯하다. 정말 마지막 장면에서 여전히 젊은 현철의 모습으로 공연을 즐기는 엔딩에서 드라마는 사실 그 젊은 현철이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던져준다. 젊은 이에게도 늙은 이에게도 녹록치 않은 그 현실의 틈에서 말이다.

 

▲ (사진=tvN)


<EP. 안녕 도로시>

연출  김윤진 / 극본 백이신 / 출연 김주헌 한지은


한 여성 가수가 자살을 한다. 그가 죽은 후에 인터넷엔 애도의 물결 대신 그의 모습이 담긴 불법 동영상 하나가 성행을 한다. 비단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며 어제 오늘만의 피해가 아닌 몰카 사건을 두고 <EP. 안녕 도로시>는 당신의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한다고 해도 똑같이 방관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초장에 던진다.


자극적인 기사를 생산하는 웹기자 ‘정후’, 똑같은 사건의 주인공이 된 그의 여동생 ‘정린’, 그리고 기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디지털 장의사 ‘도영’. 이 셋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은 깔끔한 스릴러이기보다 피해자의 고통이 내 것이고 내 일부가 되어 다소 혼란스러운 감정선을 야기한다.


‘반전’이다라고 불리우는 결말 장면에까지 도달하다보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의 당혹스러운 얼굴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드는 감정은 통쾌함이기보다 씁쓸함이다. 현실에서의 처벌은 드라마만큼이나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까. 드라마 속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시선은 어딘가에 있을 ‘정린’과 ‘도영’에게 작품이 내미는 손길일지도 모른다.



▲ (사진=tvN)

 

<덕구 이즈 백>

연출 허석원 / 극본 김해녹 / 출연 양경원 우현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돌아왔다. 그것도 5년 만에.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건만 기뻐하는 가족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아들의 목숨값으로 받은 보험금 10억원이 졸지에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새벽낚시를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섬 노예 생활을 했다던 아들의 진술도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저 지금처럼 죽은 듯이 살아달라던 가족의 부탁. 그럼에도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자 하는 아들 ‘덕구’. ‘우당탕탕 현실가족 와해드라마’라는 작중의 소개글처럼 제 몸 같은 가족이 죽었다 깨어나도 기쁨은 그 순간 뿐이라는 이 드라마의 설정은 너무 사실적이라 외려 더 극적이기도 하다.


죽은 아들이 가족들에 손에 멀어지는 순간 눈 앞에 놓여진 10억원의 돈과 그에 얽힌 이해관계들 틈에서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내내 키득키득 웃기 바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덕구가 선택한 결말은? 죽지도 못하고 사는 심정이었던 인간 앞에 다시 한 번 파도가 내리친다. 덕구는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 제 의지대로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직접 확인해보시길.

▲ (사진=tvN)

 
<박성실씨의 사차 산업 혁명>

연출 박지현 / 극본 송영준 / 출연 신동미 배해선 허영지


AI 상담 기술이 발전하자 고장업무 1팀 상담사였던 박성실씨는 직장을 잃을 위기에 봉착한다. 뉴스에서 가열차게 떠들어대던 AI와 인간의 대결은 흥미진진했지만 자신의 일로 닥쳐와 일거리를 빼앗아 가는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회사의 사람들이 떠나가고 남은 1팀 상담사는 단 세 명. 그들은 AI 상담 기술과 맞서 싸워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기로 한다. 기술이 따라갈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앞세워 말이다. ‘일하는 자 먹지도 말라’는 가훈을 걸고 그저 기계적으로 공장 속 부품마냥 굴러가야 했던 박성실씨가 처음으로 일에 감정을 불어넣는 순간이다. 그의 동료들도 숨겨진 자신의 장기와 특기를 살려 고객들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회사 사람들이 떠난 휑한 사무실에서 우리 내일도, 모레도 함께 출근하고 퇴근하자며 직원 셋이 서로의 의지를 다지는 장면에선 만감이 교차한다. 그들을 응원하기엔 현실의 벽이 높은 걸 알지만 그들을 포기하기엔 역시 직장인인 나와 뗄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기에. 박성실씨의 혁명은 사실 혁명하고자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 (사진=tvN)

 

<관종>

연출 이예림 / 극본 이봄 / 출연 안소희 곽동연


유튜버, 그 중에서도 크나큰 관심과 사랑을 몰고 다니는 인플루언서. 영상 속에서만 보면 그들의 일상은 매일이 파티고 축제인 것만 같다. 역시 화려한 일상을 이어나가던 유튜버 ‘유하나’는 라이브 방송 도중 납치를 당하게 된다.


유하나가 사실은 거짓말로 금수저 생활을 이어나갔다는 것을 빌미로 진실을 말하게끔 협박하는 납치면 ‘강태수’. 서로를 경계했던 둘은 각기의 어려운 사정을 들추며 가까워진 듯 했으나 진짜 ‘관종’이자 ‘어그로꾼’의 등장으로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사실 유하나의 실체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유하나 사망소식 이후 채널에서 영상이 올라와도 단순 조작된 영상이라며 그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의 반응일 것이다. 거짓말로 또 다른 거짓말을 숨기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마저도 거짓말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자극만을 찾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이들에게 과연 진실이 중요키는 할까. 하나와 태수의 마지막 역시 사람들은 가십거리로 소비하다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자신의 진실이 담긴 영상을 지워달라며 하나가 태수에게 애원했듯이 그렇게.

 

▲ (사진=tvN)

 

<러브 스포일러>

연출 김건홍 / 극본 홍은주 / 출연 이주빈 권수현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사랑의 유통기한을 알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왔다. 이 ‘러브 스포일러’ 기술에 상처를 받은 두 남녀가 만나게 된다면 그들은 다시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까?


서로에게 호감을 가질수록 러브 스포일러를 열어보고 싶은 욕심이 앞서고 예전에 받았던 상처가 되살아난다. 과거에 발이 묶여 미래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할 수 없는 관계는 비단 연애의 형태만이 아닐진데 상대가 애틋해지는 순간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너무 많은 감정을 지고 가야 하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그 의문을, <러브 스포일러>는 ‘아날로그 연애’라는 키워드를 앞세워 직접 손이 닿고 눈이 마주치는 가까운 곳에서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는 장면으로 풀어나간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얼마나 되었든지 간에, 서로에게 닿고 싶어 한다는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 (사진=tvN)

 

<산부인과로 가는 길>

연출 김양희 / 극본 이하니 / 출연 박하선 배윤경


‘좀비떼를 뚫고 산부인과로 향하는 임산부’라는 설정만으로 이미 SNS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드라마 <산부인과로 가는 길>은 보기 전부터 내 흥미를 끌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사람보다 느린 좀비떼가 득실거리는 국가비상사태. 전쟁통에서도 사랑은 꽃을 피웠고 좀비떼 안에서도 새 생명이 태어난다, 이건가.


막상 드라마를 보면 그리 낭만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만삭이 된 ‘화영’이 좀비가 되어버린 남편을 겨우 찾았더니 그곳은 사실 불륜의 현장이었고 산부인과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좀비가 된 동료 의료진을 어쩔 수 없이 죽여버린다. 간호사와 화영은 서로의 연락에 기대어 각기 아기를 맞을 준비를 해나간다. 정말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를 해나가는 두 여성의 서사는 모성애와 직업적 사명감 외에도 그저 질긴 두 캐릭터의 생명력이 돋보이게 한다. 피 묻는 현장, 달려드는 좀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뚝 선 여성 캐릭터. 무언가로 도달하고자 하는 질긴 캐릭터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면, <산부인과로 가는 길>을 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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