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내가 저번주에 무슨일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유니다.
세월이 야속하게도 옛날에는 잘 기억하고 있던 것들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심지어는 동기의 이름도 까먹어버릴 정도니 말이다. 때문일까 어느 늦은 밤 휴대폰 속 네이버 캘린더를 보며, 흘러간 기록들을 짧게나마 정리하고 싶었다. 센치했던 그날 밤, 나는 고심 끝에 바로 다이어리를 질렀다.
#일상을 기록하는 새로운 기법, 불렛저널
허나 천성이 게으른 나는 수많은 다이어리를 떠나보냈다. 어릴때도 비밀 일기장을 사면 한 번도 열쇠를 돌려본 적이 없다. 관상용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꾸준히 했던 것은 오로지 방학숙제로 냈던 일기뿐이었다.
막상 기록을 시작하려니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냥 닥치는 대로 적을까 막노트처럼?' 하고 옛날에 사둔 공책과 펜을 들었다. 뭔가 일기는 손으로 꾹꾹 눌러써야 되고 '이게 기록의 맛'이지라는 생각 때문에 종이와 펜을 들었지만 하얀 종이에 뭘 적어야할지 생각이 안났다.
혼란의 순간에 떠오른 것이 바로 '불렛저널' 기법이다. 쉽게 말하자면 '체크리스트'다. 불렛저널은 내가 해야할 일, 진행중인 일, 하고 있는 일을 기록으로 적어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라이더 캐롤'의 시간 관리 기법으로 알려졌다. 18년도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불렛저널은 변형이 자유로워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라이더 캐롤은 초등학교 때 집중을 전혀 하지 못하는 주의력 결핍 장애 진단을 받았다. 산만한 자신의 모습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모든 일에 소극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병을 비관하다 주의력이 높은 친구들을 살펴보니 모두 기록을 하는 습관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것들을 기호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불렛저널이다. 이 기법은 SNS를 통해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일상를 기록한다'에 체크리스트가 합쳐진 이 간단한 방법은 나와 꽤 잘 맞을 것 같았다. 이제서야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펜을 들고 내가 원하는 기록장의 모습을 체크리스트로 남겼다.
#내 마음대로 쓰는 자유로운 기록장
수많은 기록장을 떠나보낸 나에게 어떤 것이 제일 잘 맞을까 기법은 정해졌다. 그럼 다음은 종이와 펜이겠지. 나는 간단한 걸 선호한다. 한꺼번에 확인하는 것을 좋아하고 기록에 엄청난 공을 들이지 않는다. 내가 무엇를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만 알아보면 된다. 그렇게 추려내다 보니 남은 것은 핸디 사이즈의 노트와 유성펜 그리고 스티커와 강조를 위한 하이라이터였다.
이전에도 여러번 일기를 쓰고자 시도했던 전적을 살펴보건데, 예쁘게 꾸미려 하면 오히려 더 못썼다. 손을 대기 싫어지게 되면서 기록을 이어가기가 힘들어졌다. 심지어 무거우면 가방에 집어넣지도 않았다. 필통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펜도 딱 필요한 것 두개 그리고 그냥 붙여서 기분이라도 좋아지라고 스티커, 그렇게만 필요했다.
하나씩 챙기다 보니 한가지가 부족했다. 노트는 있는 것을 잘라서 쓸 수 있었지만 바인더가 없었다. 종이만 덜렁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 길로 폭풍 검색을 통해서 적당하게 세일을 하고 있던 '트래블러스 노트'를 샀다.
#트래블러스 시간과 기록의 미학
트래블러스노트는 미도리사에서 만들었다. 여행을 모토로 가볍게 다니며 일상을 기록하라는 취지의 노트이다. '일상을 여행처럼!'에 맞게끔 여행과 관련된 다양한 굿즈가 존재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태에 문구덕후의 피가 끓었지만, 내 취지인 간단한 기록에는 많은 굿즈가 오히려 짐이 된다는 것을 이미 나는 기록을 통해서 습득했다.
물론, 트래블러스 라인을 사랑하고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당연히 사야할 것들이 몇개가 있다. 멋스러운 만년필을 위해 걸어놓을 수 있는 펜홀더, 트래블러스 한정 펜이나 책받침, 그리고 수납력을 높여주는 각종 속지들까지. 기록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다.
그 중 나는 가장 필요한 바인더, 그리고 스티커를 담을 수 있는 포켓만 구매했다.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 그리고 집에 있는 것을 배제하니 딱 이렇게 두개가 필요했다. 주문을 하고 오매불망 노트가 배송되길 기다렸다. 집에 굴러다니는 노트들을 찢어 사이즈에 맞게끔 잘라내는 그 순간에도 기록을 했다.
트래블러스 노트는 아주 딱 맞게 여행을 시작하기 좋은 주말에 도착했다. 기록의 여정에 필요한 바인더, 굴러다니던 유성볼펜과 하이라이트 그리고 스티커 이제 완벽하다.
# 기록에 필요한 아주 단순한 도구
내 기록을 보여드리기 전 내가 쓰는 문구류들이 궁금할 수 있으니 소개를 간단히 해보려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하이라이터는 '마일드라이너 코랄핑크'색 그리고 '모나미 사의 FX ZETA'이다. 사실 두개 다 문구 덕후이신 분들이라면 하나씩은 소장하고 있을 훌륭한 필기도구이다.
마일드라이너는 색이 쨍하지 않기 때문에 촌스럽지 않게 하이라이트 강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너무 묽지 않아서 뒷면에 새어나오지 않아 깔끔하게 기록을 할 수 있다. 공부할 때는 마일드라이너를 쟁여놓고 썼을 정도니 말이다. 그 결과 아직도 내 책상에는 마일드라이너 꾸러미가 굴러다니고 있다. 좋은 거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바로 색을 골랐다. 주 용도는 본질에 충실하게 하이라이팅이다.
모나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국산 똥펜이다. 하지만 모나미에도 고오급 라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꽤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일본 문구계를 뒤엎을 아성의 라인이 바로 FX ZETA이다. 부드러운 필기감에 똥도 생기지 않고 잘 번지지 않는다. 그 위에 마일드라이너를 쓱쓱 그어도 깔끔하다. 이런 제품이 있었다니 실로 놀랍다.
이렇게 본질에 충실한 두가지면 충분하다.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펜과 종이 그리고 언제든 꺼내쓰고자 하는 마음이니까 말이다.
# 유니는 이렇게 기록한다
나의 기록은 크게 '내가 해야할 일에 대한 정리' 그리고 그에 따른 '짧막한 코멘트'가 전부이다. 오엔즈일, 본업, 취미, 건강을 위해 해야할 일까지 모든 것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아침에는 밥을 먹으면서 일정을 기입한다. 나의 불렛에는 월간이 없고 거의 현재이다. 한달의 경우에는 내 핸드폰 네이버 캘린더가 열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를 중점으로 기록한다. 하루하루 쌓아가는 재미가 있다. 저녁에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잠이 들기 전 내가 무언가를 했는가 되짚어 본다. 그렇게 내 머리에 하루를 덧칠해준다. 잊혀질 날이지만 기록에는 살아있다.
불렛저널을 하면서 오래 유지하기 위한 팁을 말하자면 key(체크박스의 형태 완료, 진행중과 같은 기호들 , 일종의 약속)은 간편하게 5개를 넘기지 않는 것이다. 언제 자신의 키가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포스트잇을 활용해서 적어두는 것도 좋다.
또한 불렛저널의 구성 중 가장 맘에 들고 모든 이들이 해봤으면 싶은 것을 바로 '해빗트레커(Habit Tracker)'이다. 현재 나는 운동 트래커를 운영중이다. 4월달 식후에 가볍게 운동을 해야하고 체중과 체지방을 빼기 위해서 공복운동을 도전중이다. 하루하루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자신의 습관을 성형하는데 도움이 되고 동기 부여에도 좋다.
이렇게 적어서 확인하니 열심히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록이 보여주는 내 하루는 생각보다 다양한 것들로 가득했다. 할 일들을 하나씩 확인해 체크하는 즐거움이, 기록이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앞으로도 기록을 솔직하게 써내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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