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오즈앤엔즈를 같이 운영하고 있는 내 친구 히죽이는 드라마나 영화가 재밌으면 몇 번을 다시 봐도 재미있다고 했다. 10년 전의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다 본 거고 결론을 아는데 왜 또 봐?'라고 생각했던 20살의 슈니였다.
최근 들어 예전 드라마나 영화를 볼 수 있는 루트가 많아졌다. 넷플릭스, 왓챠 등의 서비스도 있고 가끔 케이블에서 연속 방송으로 방송을 해주기도 한다. 10년 전 "옛날에 봤던 걸 왜 또 봐?"라고 했던 없다. 왜냐면 내가 요즘 옛날 드라마에 다시 빠지고 말았으니까.
2005년, 최고 시청률이 50.2%나 나왔던 어마어마한 드라마였던 '내 이름은 김삼순.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가 꼬박꼬박 본방사수를 했던 드라마였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 다시 보기 하이라이트를 봤다가, 왓챠에 올라와 있길래 1회부터 정주행을 시작 했다.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15년 만에 세상이 바뀐 것이 너무 극단적이게 보이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15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촌스러운 이름, 뚱뚱한 외모라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전문 파티시에로 당당히 살아가는 30대 노처녀 김삼순의 삶과 사랑을 경쾌하게 그려낸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내용이다. 2005년, 중학생이었던 내가 기억하는 이 드라마는 '뚱뚱한 노처녀 삼순이가 잘생기고 어리고 돈도 많은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난 드라마'였다.
2020년, 29살인 내가 다시 본 이 드라마는 사뭇 느껴지는 바가 달랐다. '자기 멋대로 사는 부잣집 도련님이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멋진 삼순을 만나 사람답게 살아가게 되는 스토리'라고 느껴졌다. 실제로 '내 이름은 김삼순' 몰아보기 유튜브 영상에도 죄다 남자 주인공을 욕하는 댓글밖에 없다. 이렇게나 세상이 바뀌었다. 물론 다시 봐도 재미있긴 했지만.
드라마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위의 설명에 나와있는 그대로다. 파티시에인 여자 주인공 '김삼순'이 남자 주인공 '현진헌'을 만나며 흘러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김삼순은 다른 드라마 여주인공들과는 달리 당당하고, 멋있고 자기감정에 솔직하여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돼지 인형도 인기를 얻었고, 찜질방 양머리 또한 유행이 되었다. 이때만 해도 흔치 않았던 '연상연하 커플'을 다룬 드라마기도 하다.
'현진헌'이라는 남자 주인공은 잘생기고, 키도 크고, 젊고, 능력도 있다. 한마디로 완벽하다. 재수없게. 15년 전 스타일이라 조금 촌스럽긴 하지만, 현빈은 이상한 스타일로 해놔도 멋지다. 현진헌 특유의 그 싸가지 없는 말투도 섹시하게 느껴질 만큼. 재벌 3세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도도하고 싸가지가 없는 캐릭터.
말이 좋아 재벌 3세에 어리고 잘생긴 백마 탄 왕자님이지, 지금 보면 안하무인에 전 여자친구 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제멋대로 구는 '똥차'다. 오천만 원을 빌미로 삼순에게 협박도 하고 말이지. 하지만 이런 '왕싸가지' 진헌이 삼순을 만나면서 귀엽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극 중 삼순의 나이는 30세. 지금 30세면 한창이라고 생각하지만 15년 전, 30살이면 노처녀로 취급받던 시대였나 보다. 드라마 안에서는 '노처녀'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데 말이다.
드라마 시작하자마자 삼순은 남자친구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는 아주 거지 같은 상황에 놓인다. 슬퍼하고 욕하고 하면서도 또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산다. 그 후로도 다양한 거지 같은 상황들이 반복되지만, 삼순은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산다. 자신이 제일 잘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어렸을 때엔 30살이면 완전 어른의 나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 달 후면 30이 되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런 건 없다. 아직도 20살 때 나와는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나이만 먹었다. 내가 삼순이의 나이가 되어보니, 세상은 퍽퍽하고 힘들기만 하다. 가끔은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막 살고 싶은 기분까지 든다. 드라마 속 삼순은 누구보다도 잘 살아가고 있는 멋진 현대 여성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는 웃기다는 거다. 정말 웃기다. 삼순의 필터링 없는 대사도 웃기고, 삼순의 엄마와 언니 또한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장 웃겼던 장면은 바로 노래방 씬!
단연코 2000년대 가장 유명한 OST라고 자부한다. "숨겨왔던 나~의" 로 시작하는 클래지콰이의 'She is'. 드라마가 인기 있었던 만큼 OST들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개인적으로는 진헌과 희진이 이별할 때 나왔던 노래인 '이별 못한 이별'이 가장 좋다. 그 분위기와 상황에 너무 잘 어울렸고. 려원의 눈물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보는 나마저 마음이 아팠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토리 자체는 사실 별 내용이 없다. 하지만 개명을 해서라도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했던 삼순이 '김삼순' 그 자체를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났다는 것과 자기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며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우리네 삶이 아닐까? 힘들고 고난이 있어도 묵묵하게 살아가는. 잘 이겨내며 살아가는. 드라마를 보며 인생을 배운다.
살아가다 보면 '왜 이렇게 내 인생은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더러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며, 나만 그런 생각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일상의 위로를 느낀다.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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